[3부작 특집] ② 서울 15개 구청장 집단 반발 "토지허가제 즉각 철회하라"

특별취재팀

yheo@fransight.kr | 2025-11-25 12:23:41

"재산권 침해·행정 부담 폭증"…중앙정부와 지방자치 주도권 정면충돌
재개발 지연·상권 위축 우려…"규제 실효성도 의문"

[프랜사이트 = 특별취재팀 박세현·허양 기자] 

정부가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은 지 닷새 만에 전례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서울 15개 자치구 구청장들이 10월 22일 서울시청에 집결해 "토지거래허가제 전면 확대를 즉각 철회하라"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자치구가 중앙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공개적으로 집단 반발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전역 지정은 과도한 규제…재산권 침해"

구청장들이 한목소리로 주장한 핵심은 세 가지다. 먼저 사유재산권 침해 문제를 제기했다. 토지거래허가제는 거래 시 사전 허가가 필요하고 허가받은 목적대로 사용하는지 사후 점검까지 받아야 하는 강력한 규제다.

구청장들은 "주민 재산권을 사실상 직접 규제하는 조치"라며 "과거 특정 위험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적용되던 허가제를 서울 전체로 확대하는 것은 비례성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일부 자치구는 "투기가 성행하거나 지가가 급등하는 특정 지역에만 적용해야 할 제도를 일괄 적용한 것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둘째는 지방자치와 행정 협의 절차 무시다. 국토부는 "법적으로 지자체와 사전 협의할 의무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자치구들은 "서울시와 25개 자치구를 통째로 묶는 중대한 조치를 협의 없이 발표한 것은 지방자치 무시"라고 반발한다.

특히 토지거래허가제는 민원 상담, 허가 심사, 현장 조사, 사후 점검 등 대부분을 기초지자체에서 처리해야 해 행정 부담이 폭증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 구청 관계자는 "한정된 인력으로 수백 건의 민원을 감당해야 한다"며 "중앙이 결정하고 지방이 감당하는 구조는 지속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셋째는 재개발·재건축 지연으로 인한 도시경쟁력 약화다. 구청장들은 토지거래허가제가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지분 확보 과정을 직접 지연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울시가 추진 중인 신속통합기획, 모아타운, 기반시설 연계 개발 등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구청장들은 성명에서 "주택 공급이 절실한 시기에 토지거래허가제는 개발을 묶는 결과가 된다"며 "장기적으로 집값 안정이 아니라 불안정성 확대를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앙과 지방, 도시정책 주도권 다툼으로 비화

이번 반발에 참여한 15명의 구청장 중 상당수가 국민의힘 소속이고 무소속도 포함됐지만, 더불어민주당 소속 구청장은 공식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야당의 정부 정책 견제" 혹은 "지방자치단체의 권한 확보를 위한 실질적 대응"이라는 상반된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정치적 해석을 떠나 이번 사태의 본질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도시정책 주도권 다툼이다. 중앙정부는 "집값 안정은 국가적 과제이고 투기 차단이 우선"이라는 입장이고, 지방정부는 "현장 행정 부담과 개발 일정, 지역경제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맞선다.

이 충돌은 재건축·재개발, 공공주택 공급, 도심 산업구조 개편 등 서울의 주요 도시정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규제 실효성도 의문…시장 왜곡 우려"

일각에서는 토지거래허가제의 정책 실효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과거 강남·용산 등 특정 지역에 적용된 사례를 보면 초기에는 거래가 급감했지만 일정 기간 후에는 규제 우회 거래가 늘거나 가격 상승 억제 효과가 제한적이었다는 분석이 여러 차례 나왔다.

이번처럼 전면 지정할 경우 투기 수요 차단 효과는 커질 수 있으나 시장 왜곡과 풍선효과 가능성도 함께 증가한다. 특히 오피스텔, 상가, 비규제 지역 등 다른 자산으로 투기 수요가 이동할 가능성이 높아 규제 목적이 달성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상권 전체가 위험해진다"…지역경제 타격 우려

구청장들이 반발하는 더 큰 이유는 토지거래허가제가 가져올 지역경제와 상권의 구조적 변화 때문이다. 자치구들은 이미 상권 쇠퇴, 재개발·재건축 지연, 임대료 상승, 청년층·가족층 이탈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토지거래허가제는 건물 거래 지연, 상권 유입 자본 축소, 도심 내 상가 낙후 심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소규모 점포가 밀집한 강북 도심권과 외곽 배후주거 상권에서는 상권 활성화 사업과 도시재생 추진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정부 "협의하겠다"…원점 재검토는 미지수

정부는 반발 직후 "서울시와 충분히 협의하겠다"고 밝혔지만, 토지거래허가제 자체를 전면 재검토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갭투자 차단과 주택시장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있어 규제 완화나 지역별 차등 적용에는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토지거래허가제가 집값을 장기적으로 안정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이미 시행된 규제를 정치적 압박만으로 단기간에 철회하기도 어렵다"고 분석한다.
결국 이번 사태는 중앙의 규제 의지와 지방의 현실 대응이라는 구조 속에서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넘어 '도시 운영권' 문제로

토지거래허가제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부동산 정책 이슈가 아니다. 이번 사태는 "누가 도시의 흐름과 성장 방향을 결정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다. 중앙정부는 투기 억제와 시장 안정을 우선 가치로 두고, 자치구는 지역경제·상권·개발 일정 등 현장 문제를 더 중시한다. 두 시선의 충돌은 서민 거주지부터 도심 상업지, 프랜차이즈 상권, 도시재생 사업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도시 전체 생태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토지거래허가제는 부동산 규제를 넘어 상권과 일자리, 지역경제 전체의 규칙을 바꾸는 조치다. 그 파장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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