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5부작 스테이블 코인] 4부 한국 기업들, 스테이블코인 글로벌 확산에 '선택적 대응' 나서
특별취재팀
yheo@fransight.kr | 2025-09-26 07:05:22
국내 제도화 지연 속에서도 경쟁력 확보 위한 사전 준비 착착
[프랜사이트 = 특별취재팀 박세현, 허양 기자]
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금융 질서를 바꾸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잡아가는 가운데, 한국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신중한 모습이다. 미국과 유럽이 제도화와 상용화를 빠르게 추진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규제 리스크와 제도적 불확실성 속에서 제한적인 논의만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삼성전자, 쿠팡, 업비트 등 주요 기업들은 글로벌 흐름에 발맞춰 선제적인 대응 전략을 마련하며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한국 금융당국, '은행 중심 발행' 원칙 고수
한국 금융당국은 스테이블코인을 공식적인 결제 수단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신 은행 중심 발행 모델을 검토하며 극도로 신중한 접근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는 반드시 은행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발행사의 지급준비금 신뢰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금융위원회 역시 비금융 기업이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발행하는 데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금융위는 제도적 기반 마련을 위한 연구 용역과 시범 사업을 통해 점진적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지만, 구체적인 일정이나 로드맵은 아직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한국은 '규제 우선' 접근법을 택하면서 혁신보다는 안정성 확보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연간 수조 달러 규모로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이러한 신중한 태도가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 해외 검증된 스테이블코인과 연동 추진
3부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삼성전자는 국내 규제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글로벌 중심 전략을 선택했다.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발행하기보다는 해외에서 이미 검증받은 USDC, USDT 등과의 연동을 통해 삼성페이와 삼성월렛에 통합하는 방식을 채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이미 북미 시장에서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와 협력해 암호화폐 결제 기능을 일부 연동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결제 인프라 스타트업 레인에 투자하며, 스테이블코인 결제 서비스 확산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이러한 글로벌 실험은 향후 한국 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 제도화가 이뤄질 때 빠르게 적용할 수 있는 사전 준비 과정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쿠팡, 해외 셀러 정산에 블록체인 기술 도입 검토
국내 유통업계 1위인 쿠팡도 블록체인 기반 결제망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결제 서비스 기업 스트라이프와 협력해 해외 판매자 정산 과정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쿠팡이 스테이블코인을 본격 활용할 경우, 해외 셀러와의 거래 비용을 대폭 절감하고 정산 속도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수출입 거래 비중이 높은 글로벌 유통 플랫폼에 상당한 경쟁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쿠팡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할 단계는 아니지만, 글로벌 결제 인프라 혁신을 위한 다양한 기술적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업비트 등 거래소, 결제 인프라 제공자로 변모 시도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들도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 서비스를 실험하며 사업 영역 확장에 나서고 있다.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업비트는 블록체인 기술 기업과 협력해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시범 운영한 바 있다. 이는 거래소가 단순한 암호화폐 투자 플랫폼을 넘어 결제 인프라 제공자로 변모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거래소들이 보유한 대규모 사용자 기반과 암호화폐 운용 노하우를 결제 서비스와 연결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한국에서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제도적으로 허용되지 않아 거래소들의 실험은 아직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업계에서는 관련 제도가 정비되면 거래소들이 본격적으로 결제와 송금 서비스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핀테크·중견 IT기업에도 새로운 기회
국내 핀테크 기업과 중견 IT기업들에게도 스테이블코인은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간편결제 서비스 기업들은 이미 QR코드 결제, 간편 송금 서비스를 기반으로 수천만 명의 사용자 네트워크를 확보한 상태다. 여기에 스테이블코인 기능을 접목하면 해외 송금과 다국적 결제가 기존보다 훨씬 간편하고 저렴하게 가능해진다. 특히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전통적인 금융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 한국 핀테크 기업이 스테이블코인 기반 송금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글로벌 시장 진출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핀테크 업계 관계자는 "국내 규제 환경은 아직 불투명하지만, 해외 시장을 겨냥한 스테이블코인 서비스 개발은 이미 여러 기업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도화 과제 산적, 기업들은 사전 준비 가속
한국 기업들의 스테이블코인 대응 전략은 크게 두 축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글로벌 시장을 중심으로 한 실험과 투자, 다른 하나는 국내 규제 환경에 맞춘 제한적 도입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스테이블코인 제도화가 본격화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발행 주체와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제도 설계, 세무·회계 처리 기준 마련, 소비자 보호 장치 확립 등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금융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이 세 가지 핵심 과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스테이블코인의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자리잡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경쟁력 확보 위한 전략적 접근 필요
한국은 아직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에 신중한 접근을 유지하고 있지만, 삼성전자, 쿠팡, 업비트 등 주요 기업들은 글로벌 동향에 발맞춰 빠르게 준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규제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이중 전략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향후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제도화가 본격화될 경우, 국내 기업들이 해외 송금, 프랜차이즈 정산, 유통·물류 결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의 관계자는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 확산 속도를 고려할 때, 한국도 규제 안정성과 혁신 경쟁력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업들의 사전 준비와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조화롭게 이뤄져야 글로벌 시장에서 뒤처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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