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연 405잔 마시는 한국인, 커피 공화국의 민낯
우승련 기자
srwoo@fransight.kr | 2025-11-15 08:59:27
가성비와 프리미엄 사이, 10만개 카페 시대가 열렸다..
MZ는 인증샷, 직장인은 사이렌오더...
[프랜사이트 = 우승련 기자]
출근길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 점심 후 동료와 마시는 아메리카노, 오후 업무를 위한 카페라떼. 한국인에게 커피는 이제 기호식품이 아니라 일상 그 자체다. 2024년 기준 한국인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405~416잔. 하루 평균 1.1잔 이상을 마시는 셈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최상위 수준이며,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커피 소비국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커피를 마시는 가장 큰 이유는 "습관" 때문이다. 응답자의 56%가 이 항목을 선택했다. 각성이나 맛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마시는 게 일상이 됐다는 뜻이다. 커피는 한국 사회에서 단순한 음료를 넘어 생활 리듬의 일부가 됐다.
'어디서나 카페'… 3년 새 3만개 늘어
이 같은 소비를 뒷받침하는 건 압도적인 카페 인프라다. 전국 카페 수는 2019년 약 6만9000개에서 2023년 10만2000개로 급증했다. 불과 4년 만에 3만개 이상이 늘어난 것이다. 서울 강남구만 해도 반경 500m 안에 카페가 10개 이상 밀집한 곳이 수두룩하다. 제주도는 관광 수요 덕분에 인구 대비 카페 밀집도가 전국 최고 수준이다.
수도권은 여전히 최대 소비 권역이다. 서울·경기·인천 지역이 전국 커피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출퇴근 시간대 역세권 카페는 테이크아웃 손님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부산과 제주 등 관광지는 외국인과 국내 여행객 유입에 따라 계절형 매출 집중 현상이 뚜렷하다.
스타벅스 vs 메가커피, 양극화의 상징
한국 커피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양극화'다. 한쪽에는 스타벅스로 대표되는 프리미엄 카페가, 다른 한쪽에는 메가커피·컴포즈커피 같은 가성비 브랜드가 자리 잡았다.
스타벅스코리아는 2024년 매출 3조1000억원을 기록하며 여전히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2025년 상반기에만 매출 1조5600억원, 영업이익 754억원을 올렸다. 전국 2000여개 매장을 운영 중이며, 2014년 국내 최초 도입된 모바일 주문 '사이렌오더'는 지난 8월까지 누적 5억건을 돌파했다. 20~50대 전 연령대에서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로 꼽힌다.
스타벅스는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다. '제3의 공간(Third Place)'이라는 콘셉트로 고객에게 집과 직장이 아닌 또 다른 안식처를 제공한다. 30~50대 직장인층은 리워즈 할인과 모바일 사전주문을 적극 활용하며 충성도를 유지한다. MZ세대에게는 인스타그램 인증샷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이자, K-pop 스타나 인기 캐릭터와의 콜라보 상품을 만날 수 있는 장소다.
반대편에선 가성비 브랜드가 무서운 속도로 확장하고 있다. 메가커피는 2022년 2073개에서 2025년 10월 기준 3929개 매장으로 늘어났다. 3년 만에 거의 두 배가 된 셈이다. 컴포즈커피는 2024년 7월 필리핀 외식 대기업 졸리비(Jollibee Foods Corporation)가 70% 지분을 인수하면서 글로벌 자본의 주목을 받았다. 현재 전국 30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이들 브랜드의 성공 비결은 명확하다. 대용량 아이스 음료를 2000~3000원대에 판매하며 접근성을 극대화했다. 메뉴는 단순하게 유지해 회전율을 높이고, 대량 구매로 원가를 절감했다. 고물가 시대에 지갑이 얇아진 학생층과 가정 소비자들이 대거 유입됐다.
MZ는 SNS, 직장인은 사이렌오더
세대별로 커피를 소비하는 방식도 다르다.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는 SNS 감성과 인증샷 문화를 중시한다. 시즌 한정 음료나 콜라보 상품이 나오면 매장 앞에 줄을 선다. 이들에게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자기표현의 수단이다. 특정 브랜드를 방문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스타일과 소속감을 드러내는 신호가 된다.
30~50대 직장인층은 기능적 소비에 집중한다. 주중 점심시간과 오후 시간대에 이용 빈도가 높으며, 피로 회복과 집중력 유지를 위해 커피를 찾는다. 모바일 주문과 리워즈 할인을 적극 활용해 시간과 비용을 아낀다. 스타벅스는 이들을 겨냥해 시간대별 할인, 누적 포인트, 연말 결산 캠페인 등 디지털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40대 이상 시니어층은 인스턴트커피나 근거리 저가 카페를 선호한다. 각성 효과와 루틴화된 소비 경향이 강하다. 습관적으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커피를 마신다.
원두 가격 급등에도 출점 경쟁 치열
한국 커피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압도적인 1인당 소비량. 둘째, '어디서나 보이는 카페' 인프라. 셋째, 가성비와 프리미엄의 이중 구조다.
다만 공급 측면에서는 리스크도 크다. 2024년 이후 글로벌 로부스타 커피 가격이 급등하고 원화 약세까지 겹치면서 원가 부담이 커졌다. 2024년 커피 원두 수입액은 12억4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3% 증가했고, 수입량은 약 19만5000톤에 달했다. 저가 프랜차이즈는 단순 메뉴와 대량 구매로 이를 상쇄하고 있지만, 중소형 카페는 가격 인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편의점과 베이커리의 저가 커피 경쟁도 심화되고 있다. 편의점 PB 커피는 1000~2000원대로 접근성이 높아 일상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카페 브랜드들은 차별화 전략을 강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다.
2025년 키워드: 이중 세그먼트와 디지털
업계 전문가들은 2025년 커피 시장의 핵심 전략으로 '이중 세그먼트 운영'을 꼽는다. 가성비와 프리미엄 두 축을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 아이스 음료는 접근성을 유지하되, 수익은 시즌 한정 상품이나 디저트 세트로 확보하는 방식이다.
디지털 타임세일 강화도 주목받고 있다. 특정 시간대 할인과 모바일 사전주문을 통해 오후 매출을 끌어올리는 전략이다. 투썸플레이스는 디저트 중심의 프리미엄 카페 이미지를 강화하며 1700개 매장을 운영 중이고, 2026년 미국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이디야커피는 매출과 이익이 둔화되면서 리브랜딩 단계에 접어들었다.
관광 중심지 확대 전략도 유효하다. 제주와 부산 등 관광지형 카페는 전망 좋은 입지와 디저트 중심의 체험형 매장으로 차별화에 성공하고 있다.
한국 커피 시장은 이제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습관'이라는 강력한 소비 동력과 끊임없는 브랜드 경쟁은 여전히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연 405잔, 하루 한 잔 이상의 커피. 한국인의 일상은 오늘도 커피 한 잔으로 시작된다.
[ⓒ 프랜사이트 (FranSight).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