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세탁산업의 미래 제1부: 세탁산업의 지형 변화
특별취재팀
yheo@fransight.kr | 2025-10-02 10:36:17
프랜차이즈·O2O·무인빨래방 '맞수 대결'
5년간 5천 곳 폐업 속 살아남은 강소 세탁소의 생존법
[프랜사이트 = 특별취재팀 박세현·허양 기자]
서울의 한 골목길. 3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세탁소 간판이 바람에 흔들린다.
"옛날엔 이 골목에만 세탁소가 세 곳이었어요. 지금은 나 혼자 남았죠."
세탁소를 운영하는 박철수(68·가명) 씨는 씁쓸하게 웃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세탁소는 2017년 3만1천여 곳에서 2022년 2만6천여 곳으로 줄었다. 5년 만에 5천 곳이 문을 닫은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세탁 시장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 2026년이면 6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동네 세탁소는 사라지는데 시장은 커진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시간 없는 1인 가구가 만든 6조 시장
세탁 시장이 성장한 이유는 명확하다.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집에 두고도 바쁜 직장인들은 전문 세탁 서비스를 찾는다. 코로나19 이후엔 비대면 서비스 수요가 폭발했다. 스마트폰 앱으로 주문하면 집 앞까지 수거·배송해주는 O2O(온라인투오프라인) 세탁이 인기를 끌었다.
세탁 품목도 달라졌다. 과거엔 정장과 코트가 주류였지만, 이젠 운동화·패딩·텐트·유모차까지 세탁소로 간다. 특수세탁 시장이 새롭게 열린 것이다. 이런 변화는 전통적인 동네 세탁소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대신 새로운 사업 모델들이 등장했다.
프랜차이즈의 힘, 가맹점의 눈물
업계 1위 크린토피아는 2024년 기준 매출 2,797억 원, 가맹점 3,300여 개를 보유했다. 전국 어디서나 같은 간판과 서비스를 만날 수 있는 게 강점이다. 1990년대 후반 등장한 대형 프랜차이즈는 "와이셔츠 990원"같은 파격 가격으로 골목 상권을 빠르게 잠식했다.
하지만 가맹점주들의 고충도 크다. 본사가 지정한 세제와 자재를 의무적으로 구매해야 하고, 매출의 일부를 로열티로 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계속 투명성 강화를 요구하는 이유다.
테크 스타트업이 세탁소를 만들면
런드리고와 세탁특공대는 세탁업계의 '테크 기업'으로 불린다. 전국 가맹망 대신 직영 스마트팩토리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다. 경기도 일대 공장에선 사물인터넷(IoT) 기술로 세탁물을 자동 분류하고, RFID로 의류를 실시간 추적한다. AI가 품질까지 검수한다.
런드리고는 2024년 매출 539억 원을 기록했다. 일부 분기에선 흑자 전환 조짐도 보였다. 세탁특공대는 운동화·명품 의류 같은 특수세탁으로 고단가 시장을 노린다. 이들의 강점은 기술과 데이터다. 약점은? 큰 초기 투자와 수거·배송 물류비다. 아직 손익분기점 돌파가 과제로 남아있다.
대학가를 점령한 무인 빨래방
최근 몇 년 새 코인빨래방이 대학가와 원룸촌, 신도시 곳곳에 생겼다. 24시간 무인으로 운영되고, 대형 세탁기와 건조기를 직접 쓸 수 있다. 초기 투자금이 적고 인건비가 거의 없다는 게 장점이다. 미세먼지나 장마철엔 대형 건조기 수요가 급증해 안정적 매출도 기대할 수 있다. 크린토피아도 '코인워시 365'란 브랜드로 코인빨래방 시장에 뛰어들었다. 다만 경쟁이 심해지면 수익성이 급락할 위험이 있다. 장비 관리와 고객 대응 노하우도 필요하다.
위기 속 동네 세탁소의 반격
거대 자본과 첨단 기술 앞에서도 꿋꿋이 버티는 동네 세탁소들이 있다. 이들은 가격 경쟁 대신 차별화된 가치로 승부한다.
첫 번째 무기는 '장인의 손길'이다. 수십 년간 쌓인 경험과 기술은 자동화 설비가 따라올 수 없다. 특히 명품 의류나 까다로운 소재는 여전히 사람 손을 거쳐야 안심이다.
두 번째는 맞춤 서비스다. 단추를 달아주고, 찢어진 곳을 수선해주는 건 기본이다. 체형에 맞춰 옷 품을 줄이거나 기장을 늘리는 리폼까지 한다. 일부 세탁소는 아예 '명품 전문'을 표방한다. 가격은 몇 배 비싸지만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으로 고객과 소통하는 세탁소도 늘고 있다. 얼룩 제거 과정과 의류 관리 팁을 공유하자 택배로 세탁물을 보내는 고객까지 생겼다.
친환경도 새로운 무기다. 환경 인식이 높아지면서 친환경 세제와 재활용 포장재를 쓰는 세탁소들이 주목받고 있다.
승자는 '융합형'
세탁업 3대 모델은 각자 장단점이 뚜렷하다. 프랜차이즈는 전국망과 브랜드가 강하지만 가맹점 갈등이 있다. 직영 O2O는 기술력이 뛰어나지만 초기 투자와 물류비 부담이 크다. 코인빨래방은 소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수익성이 불안정하다.
흥미로운 건 이들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프랜차이즈가 앱 서비스를 강화하고, O2O 플랫폼이 코인빨래방에 수거함을 설치한다. "프랜차이즈 + 앱", "O2O + 오프라인 거점", "코인빨래방 + 배송" 같은 융합 모델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자기 색깔이 살 길이다
세탁업은 이제 단순한 생활 서비스가 아니다. 소비자 가치, 기술 혁신, 유통 전략이 만나는 새로운 산업이 됐다. 앞으로는 단일 모델의 우열보다 서로의 강점을 결합하는 옴니채널 전략이 승부를 가를 것이다. 동네 세탁소가 살아남으려면 대기업을 따라하기보단 자신만의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변화의 파도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 파도에 올라타 자신만의 항로를 개척하는 이들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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