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고전 속 현대를 읽다

우승련 기자

srwoo@fransight.kr | 2025-11-04 09:37:48

100년 전 개츠비의 파티는 끝났지만, 오늘의 '창업 열풍' 속 그림자는 여전하다
1920년대 미국과 2025년 한국, 자영업자의 '환상과 현실'을 잇는 위험한 다리
F. 스콧 피츠제럴드의 걸작이 던지는 질문: "당신의 꿈은 진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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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사이트 = 우승련 기자] 

1925년 출간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올해로 출간 100주년을 맞았다. 한 세기가 지났지만, 이 소설이 그려낸 '아메리칸 드림의 환멸'은 오늘날 한국 소상공인과 프랜차이즈 점주들에게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화려한 성공 신화 뒤에 가려진 구조적 불평등, 외형적 성취에 매몰된 가치관, 그리고 끝내 좌절로 귀결되는 개인의 분투, 이 모든 것이 100년의 시차를 뛰어넘어 공명하고 있다.

재즈와 금주법의 시대, 그리고 '번영의 착각'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유례없는 경제 호황을 맞았다. 1921년부터 1929년 사이 GDP는 40% 이상 급증했고, 주식시장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했다. 자동차와 라디오, 재즈와 패션, 모든 것이 '새로운 시대'를 외쳤다. 소비는 미덕이었고, 신용거래는 무한한 기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심각한 빈부격차와 도덕적 해이가 자리했다. 금주법(1920~1933)은 오히려 조직범죄를 키웠고, 도시의 부유층과 농촌·노동계층 사이의 균열은 깊어졌다. 피츠제럴드는 소설 속 '이스트 에그'와 '웨스트 에그'라는 공간적 대조를 통해 이 불평등을 날카롭게 포착했다. 구(舊)귀족과 신흥 부자,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밀려나는 평범한 이들의 절망을 그려냈다.

소설의 주인공 제이 개츠비는 사랑하는 여인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불법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다. 그는 매주 화려한 파티를 열지만, 정작 그를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은 없다. 개츠비의 비극은 단순히 '사랑의 실패'가 아니라, 외형적 성공이 내면의 공허함을 결코 채울 수 없다는 냉혹한 진실이었다.

조지 윌슨, 몰락하는 자영업자의 초상

개츠비만큼 주목받지 못하지만, 소설 속 또 다른 비극적 인물이 있다. 바로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는 조지 윌슨이다. 그는 성실하고 근면했지만, 대기업의 유통망과 자본력 앞에서 무력했다. 아내 머틀은 그런 남편의 무능함에 환멸을 느끼고 부유한 남자와 불륜을 저지른다. 결국 윌슨은 모든 것을 잃고 파멸한다.

윌슨의 정비소는 1920년대 미국 자영업자들의 상징적 공간이었다. 당시 소상공인들은 대형 체인점(A&P, Woolworth 등)의 확산으로 타격을 받았고, 신용거래 확대는 외형 성장 대신 부채와 위험을 키웠다. 도시화는 전통적인 동네 상권을 무너뜨렸다. 윌슨의 파멸은 1929년 대공황 이후 무너진 수많은 자영업자들의 전조였다.

2025년 한국, 개츠비와 윌슨 사이에서

오늘날 한국의 소상공인과 프랜차이즈 점주들은 어떤가.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자는 약 550만 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5분의 1을 차지한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100년 전 윌슨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플랫폼 기업의 독점, 치솟는 임대료, 최저임금 상승, 디지털 전환의 압박, 구조적 불평등은 여전히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하기 어렵다.

더 위험한 것은 '개츠비의 환상'이다. 일부 창업자들은 브랜드 명성이나 유행 아이템에 집착하며 과도한 초기 투자에 나선다. 마치 개츠비가 데이지를 얻기 위해 화려한 파티를 열었듯, 외형적 성공에 매몰된다. 하지만 진정한 성장은 지속 가능한 운영과 내면의 확신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한 프랜차이즈 컨설턴트는 말한다. "요즘 창업 시장은 마치 1920년대 미국 같습니다. SNS에는 성공 스토리만 넘쳐나고, 누구나 '대박'을 꿈꿉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10곳 중 7곳이 3년 안에 문을 닫습니다. 환상과 현실의 간극이 너무 큽니다."

피츠제럴드가 남긴 네 가지 교훈

『위대한 개츠비』는 오늘의 자영업자들에게 네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첫째, 환상의 성공을 경계하라. 개츠비가 사랑과 명예를 부로 착각했듯, 브랜드 명성이나 유행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지속 가능성과 내실이 먼저다.

둘째, 인간적 관계를 지켜라. 개츠비의 진짜 비극은 외로움이었다. 화려한 파티 속에서도 진심 어린 친구는 없었다. 사업에서도 신뢰, 직원 충성심, 지역사회와의 유대가 가장 강력한 자산이다.

셋째, 구조적 현실을 인식하라. 윌슨이 대기업에 눌린 것처럼, 오늘의 자영업자들도 플랫폼 독점과 자본의 논리 속에 있다. 구조를 이해하고 대응 전략을 세워야 생존할 수 있다.

넷째, '꿈'을 다시 정의하라. 피츠제럴드는 진정한 성공이란 부나 속도가 아니라 의미와 진정성에 있다고 말한다. 소상공인에게 그것은 고객 신뢰, 브랜드 철학, 윤리적 경영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로 밀려나는 조각배"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만, 결국 끊임없이 과거로 밀려나는 조각배들이다."

100년 전 피츠제럴드는 '번영의 시대'가 환상임을 간파했다. 그리고 1929년 대공황이 그의 예언을 증명했다. 오늘날 한국의 소상공인들 역시 '창업 열풍'과 '자영업 위기'라는 양극단 사이에서 조각배처럼 흔들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꿈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꿈의 본질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외형적 화려함이 아닌 진정성 있는 가치, 단기적 수익이 아닌 지속 가능한 성장, 혼자만의 성공이 아닌 함께 나누는 번영, 이것이 '현대의 개츠비'들이 배워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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