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추석 특별기획 무비자에서 ‘사전 허가’로...

이찬희 기자

chlee@fransight.kr | 2025-10-06 11:16:28

무비자 시대의 종언, 허가받은 자유의 시작
세계 2위 여권의 위상은 유지됐지만, 자유는 더 이상 '자동'이 아니다
영국·유럽·미국 전자허가제 도입으로 달라진 해외여행의 새로운 룰
Gemini 생성이미지

[프랜사이트 = 이찬희 기자]

2025년의 추석,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한국인들에게 여권은 여전히 든든한 통행증이다. 그러나 그 여권이 열어주는 문은 더 이상 예전처럼 단순하지 않다. 영국의 UK ETA, 유럽연합의 EES(출입국 시스템), 미국의 ESTA 수수료 인상 등, 세계 주요국이 일제히 전자여행허가제를 도입하면서 '무비자 자유입국'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이제 여행자는 국경을 통과하기 전,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신원을 증명하고 '허가'를 받아야만 비행기에 오를 수 있다. 자유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자유는 허가받은 자에게만 주어진다.

영국의 시민권 자문사 헨리앤파트너스가 발표한 2025년 3분기 헨리 여권 지수(Henley Passport Index)에 따르면, 대한민국 여권은 190개국 무비자 입국 가능으로 일본과 공동 2위에 올랐다. 이는 단순한 여행 편의성을 넘어, 한국이 축적해온 외교적 신뢰, 정치적 안정, 경제적 투명성을 반영하는 '국가 신용등급'이다.

그러나 '무비자'는 이제 '무절차'가 아니다. 주요 선진국은 신뢰를 유지하되, 데이터를 통해 검증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즉, 여권의 힘은 여전하지만, 그 힘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이제 '전자 허가'라는 디지털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영국 — UK ETA 의무화 (2025.1.8 시행)

영국은 1월부터 'UK ETA(전자여행허가)’를 대한민국을 포함한 무비자 83개국 국민에게 의무화했다. 비용은 £16, 유효기간은 2년. 출발 3일 전까지 신청해야 하며, 미신청자는 항공 탑승이 거부된다. 영국 정부는 이를 "보안 강화 및 불법 체류 방지" 명목으로 도입했지만, 결과적으로 무비자 입국자도 이제 '유료 허가' 없이는 발을 들일 수 없다.

유럽연합 — EES 출입국 시스템 (10월 12일 시행)

유럽 솅겐 29개국은 12일부터 EES(Entry/Exit System)를 전면 시행한다. 비EU 국가 방문자는 입국 시 여권 스캔과 함께 얼굴·지문 등록이 의무화된다. 등록된 정보는 3년간 보관되고, 재입국 시에는 자동 인식된다. EU는 이를 통해 "90일 체류 규정의 자동 모니터링"을 실현하지만, 여행객 입장에서는 입국심사 시간이 2~3시간 증가할 전망이다. 시행 초기에는 공항 대기 대란, 이른바 'EES 쇼크'가 예상된다.

미국 — ESTA 수수료 인상

미국의 전자여행허가제 ESTA는 9월 30일부터 $21 → $40으로 인상되었다. 이 중 일부는 관광기금, 나머지는 국경보안 시스템 운영비로 사용된다. ESTA는 2년간 유효하며, 인상 전에 신청한 경우 유효기간 동안 기존 요율이 적용된다. ESTA 신청 항목에는 2025년부터 '소셜미디어 계정' 입력이 포함되어, 입국심사에 온라인 신원 데이터가 반영된다.

국경을 활짝 연 대한민국 — "우리는 문을 닫지 않는다"

세계가 보안을 이유로 국경의 문턱을 높이는 사이, 대한민국은 정반대의 방향을 택했다. 외교부는 K-ETA(한국 전자여행허가제)의 한시 면제를 2025년 12월 31일까지 연장했다.

이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통한 소비 회복 정책이자, 국제 사회에 대한 '열린 신뢰'의 메시지다. 즉, 한국은 "문을 통제하기보다, 신뢰로 관리한다"는 원칙을 내세운 셈이다. 관광·프랜차이즈·숙박 산업이 동시에 회복세에 있는 지금, 이 개방적 조치는 외교적 신뢰와 경제적 실리를 모두 잡은 전략으로 평가된다.

여행자의 생존 매뉴얼 — "여권은 살아 있는 자격증"

2025년 이후의 여행자는 더 이상 단순한 승객이 아니다. 그들은 '데이터로 인증받은 이용자'이며, 여권은 일종의 디지털 신원(ID) 키가 되었다. 따라서 국민 개개인은 다음 4단계 전략을 따라야 한다.

여권 유효기간 점검: 여권이 만료 6개월 이내라면, 전자허가 신청이 거부되거나 허가가 여권 만료일에 맞춰 조기 만료된다. → 여행 전 반드시 갱신 후 신청해야 효율적이다.
전자허가 조기 신청: ETA·ESTA·ETIAS는 모두 사전 심사제로, 승인까지 최대 72시간이 걸린다. 항공권 예약과 동시에 신청하는 것이 안전하다.
EES 대비 공항 도착 시간 확보: 유럽 여행 시 입국 심사 지연이 예상되므로 출국일 기준 공항 4시간 전 도착이 권장된다.
공식 채널 이용 외교부 해외안전여행(0404.go.kr) 및 각국 정부 공식 사이트를 통한 신청만 인정된다. 대행사이트를 통한 사기 피해가 급증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여권 파워의 본질 — '신뢰'라는 국가 자산

한국 여권의 강점은 단순한 외교 성과가 아니다. 이는 장기간 축적된 국제 신뢰 인프라의 결실이다. 여권은 한 개인의 신분증인 동시에 국가의 신용을 상징하는 '브랜드 자산'이다.

한국은 싱가포르·일본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여권 3대 강국 중 하나로 꼽힌다. 그 배경에는 민주주의 안정성, 낮은 부패율, 그리고 디지털 행정의 투명성이 있다. 즉, 한 명의 국민이 공항 게이트를 통과할 때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함께 평가받는다. 여권은 외교의 결과물이자, 국가 브랜드의 실시간 인증서인 셈이다.

변화하는 산업 — 프랜차이즈·항공·관광의 구조조정

이 같은 변화는 여행자의 불편에 그치지 않는다. 항공사·여행사·프랜차이즈 본사 모두 새로운 적응이 필요하다.

항공사: 탑승 전 전자허가 여부를 자동 확인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수화된다.
여행사: 고객에게 국가별 전자허가 가이드를 제공해야 경쟁력 확보가 가능하다.
프랜차이즈 본사: 해외 시장 진출·점검 인력의 출국 절차 관리가 새로운 리스크 관리 항목으로 추가된다.

정부 또한 외교부 중심으로 '디지털 여권 4.0'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향후 민간 OTA와의 데이터 연동이 예상된다. 이는 여행산업의 전면적인 디지털 전환기를 의미한다.

여행 금지 지역 10곳, 방문하면 처벌받는다

한편 외교부는 9개 국가와 10개 지역에 대한 여행금지(4단계) 지정을 2026년 1월 31일까지 연장했다. 이 지역을 방문하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여행금지 10개 지역: 필리핀 일부 (잠보앙가 반도, 술루·바실란·타위타위 군도), 러시아 일부 (쿠르스크주 전체 및 우크라이나 국경 30km), 벨라루스 일부 (우크라이나 국경 30km),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접경지역,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미얀마 일부 (샨주, 까야주, 라카인주, 미야와디), 라오스 골든트라이앵글 경제특구, 이스라엘-레바논 접경 4-5km 구간, 레바논 남부·나바티예 주, 콩고민주공화국 북키부·남키부 주

2025년의 대한민국 여권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신분증이다. 하지만 그 힘은 '자동 자유'에서 '관리된 신뢰'로 전환되었다. 여행의 자유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허가받은 자유가 되었다.

긴 추석 연휴에 여권을 든 국민들은 다시 하늘길에 오른다. 그들의 손에 쥔 것은 한 권의 여권이 아니라, '신뢰받은 한국인'이라는 글로벌 시민권이다.

[ⓒ 프랜사이트 (FranSight).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