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빚 1070조 위기, 경제 뇌관 되나
박세현 기자
shpark@fransight.kr | 2025-10-12 12:05:45
-저소득층 연체율 12년 만에 최고치
-위기 탈출을 위한 정책 대응 시급
대한민국 자영업자들의 부채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며 금융 시스템의 안전판을 위협하고 있다. 2025년 2분기 기준,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권 대출 잔액이 약 1070조 원을 기록하며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12년 이후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12일 한국은행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제출한 ‘자영업자 대출 현황’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의 금융권 대출 잔액은 1069조6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1분기 대비 3개월 새 약 2조 원이 더 증가한 수치로, 고금리 장기화와 내수 부진의 그림자 속에서 자영업자들이 빚으로 버티는 한계 상황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세부적으로는 사업 자금 명목의 사업자 대출이 약 723조3000억 원, 생계 유지와 관련된 가계 대출이 약 346조3000억 원으로, 두 항목 모두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자영업자들의 부채 문제가 사업뿐만 아니라 가계 경제 전반을 압박하는 구조적 위기로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김 모 씨는 “2년 전 3%대였던 대출 금리가 지금 7%가 넘어가니 매달 나가는 이자가 두 배 이상 뛰었어요. 한 달 순이익이 이자로 다 나가는 기분이다”면서 “가게를 더 끌고 가야 할지, 아니면 깔끔하게 정리해야 할지 매일 고민한다”며 불안한 현실을 토로했다.
취약 계층 연체율, 12년 만에 최고 수준
단순히 규모만 커진 것이 아니라, 부채의 질적인 측면에서도 심각한 위험 신호가 감지된다. 특히 영세·저소득 자영업자의 대출 연체율이 12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이는 매출 회복 속도는 더딘데 이자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에서, 취약 차주들이 결국 대출 상환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은행 등 주요 정책 기관들은 이러한 영세 자영업자의 부실을 전체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하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들의 연체가 장기화되고 연쇄 도산으로 이어질 경우, 금융기관의 건전성 악화는 물론 소비 위축을 통해 거시 경제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연체율 급증은 일시적 현상이 아닌, 저성장과 고금리가 고착화되는 구조적 위험의 반영”이라고 본다. 특히 취약 자영업자의 부실은 비은행권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빠르게 악화시키고, 이는 다시 대출 문턱을 높여 더 많은 자영업자를 한계로 내모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부가 ‘시차를 둔 선제적 조치’가 아닌, 즉각적인 유동성 공급과 채무 조정이 필요한 때라는 분석이다.
지금의 부채 위기가 금융 위기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선제적이고 단호한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위기 대응 방안: 3대 정책 처방 시급
자영업자발 금융 위기를 예방하고 이들이 다시 경제 활동의 주역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특단의 위기 대응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기존의 단기적인 지원책을 넘어, 부실의 싹을 잘라내고 재기를 돕는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상환 불가능한 부채에 대한 맞춤형 채무 재조정 프로그램 확대가 필수적이다. 일시적인 자금난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로 상환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원금 일부 감면을 포함한 적극적인 ‘신속 채무 조정’을 통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부실을 덮어두기보다 조기에 털어내고 새 출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경제 전체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둘째, 사업 재기 및 전환을 위한 ‘소프트 랜딩’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단순히 빚을 탕감해 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경쟁력을 잃은 업종의 자영업자가 유망 업종으로 전환하거나 폐업 후 재취업을 할 수 있도록 교육, 컨설팅, 사업 전환 자금(Transition Fund) 등을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한계 상황에 놓인 자영업자들이 연쇄 도산 대신 질서 있는 퇴장 및 재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셋째, 금리 부담 완화를 위한 정책 자금 대환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높은 금리의 민간 대출을 저금리의 정책 자금으로 대환해주는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고정 금리 상품으로의 전환을 적극 지원하여 이자 변동 위험으로부터 자영업자를 보호해야 한다. 이는 당장의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고 금융 비용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여주는 가장 직접적인 위기 대응책이 될 수 있다.
1070조 원에 달하는 자영업자 대출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한폭탄이다. 금융당국은 부실의 장기화와 전이 위험을 막기 위해 신속하고 과감한 결단으로 자영업자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굳건한 정책적 안전망을 제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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