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0원은 카드로 결제되는데... 법원 수수료는 '현금으로만'?

박세현 기자

shpark@fransight.kr | 2025-11-19 15:41:57

ATM 찾아 헤매는 2025년 대한민국, 법원만 '아날로그 섬'으로 남았다
은행 영업시간 지나면 증명서도 못 떼는 법원의 민낯
©프랜사이트

[프랜사이트 = 박세현 기자] 

노상주차장의 680원 주차료도 신용카드로 결제되는 시대다. 주민센터 민원 수수료는 카드·계좌이체·전자납부가 모두 가능하며, 공공기관 대부분은 이미 '현금 없는 행정'을 실현했다. 그러나 법원에서 증명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납부하는 1,000원의 수수료는 여전히 "은행에서 현금으로 종이 수입인지를 사와서 제출하는 방식"이 유지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이 국가 행정의 표준이 된 오늘, 왜 법원만은 여전히 '현금 기반'의 전근대적 수납 방식을 고수하고 있을까.

최근 기자는 경기도 고양시의 한 법원을 찾았다. 증명서 발급을 위해 1,000원짜리 수입인지가 필요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접수 창구 직원은 "여기서는 인지 판매 안 됩니다. 법원 영내 은행에서 종이 수입인지를 사오세요"라고 말했다.

법원 건물 안 은행 창구로 향했다. 그런데 여기서도 벽에 부딪혔다. "수입인지는 카드와 계좌이체 모두 안 되고, 현금으로만 구매 가능합니다." 창구 앞에 붙어있는 안내문을 보았을 다른 민원인들처럼 기자도 은행 옆 ATM기에서 현금을 뽑아 1,000원짜리 종이 인지를 샀다. 다시 법원 창구로 돌아가 제출했다.

같은 시각, 법원 앞 주차장에서는 680원이 카드로 결제되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500원짜리 음료수도 카드로 산다. 주민센터 민원 수수료는 카드는 물론 계좌이체, 온라인 납부까지 된다. 그런데 유독 법원만 '현금'을 고집한다.

"우리가 받는 돈 아니에요" 법원의 변명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대법원 행정처에서 고위 간부로 일했던 A씨를 만났다.

"수입인지는 법원이 걷는 돈이 아닙니다. 정부 세입이에요. 법원은 그냥 납부 사실을 종이 인지로 확인만 하는 거죠."

법원 입장에서는 자기 돈이 아니니 결제 방식을 바꿀 동력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 세입을 확인하는 기관일 뿐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A씨도 현행 방식의 문제점은 인정했다. "국민에게 지나친 불편을 주는 건 사실입니다. 시스템 연계가 어렵다는 이유로 개편이 늦어졌지만, 이제는 바꿔야 할 때입니다."

'전자'수입인지의 정체는 A4 출력물

2011년 국민권익위의 권고로 시작된 '전자수입인지' 제도는 2015년 이후 전면 도입되어 이전까지의 '수입인지'를 대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만 들으면 디지털화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전자수입인지 납부 과정은 이렇다. 은행에서 필요 금액을 납부하면 '전자수입인지'라는 이름의 A4 용지가 생성된다. 이걸 출력해서 법원에 종이로 제출한다. 법원 직원은 출력물의 납부번호를 눈으로 확인한다. 우표 크기 종이 인지 한 장이 A4 용지 한 장으로 바뀐 것뿐이다. 진짜 온라인 납부 시스템과는 거리가 멀다.

A씨는 "전자수입인지는 위조 방지용으로 만들어졌는데, 지금 방식은 디지털 행정이라 보기 어렵다"며 "사실상 종이 인지를 A4로 바꾼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기재부·행안부·법원... 서로 미루기만

주민센터는 카드, 현금, 계좌이체, 온라인, 모바일까지 다 된다. 법원은? 은행 영업시간이 끝나면 증명서조차 못 뗀다. 현금이 없으면 ATM을 찾아 헤매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책임 주체'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수입인지는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소관의 세입 제도다. 법원은 '확인 기관'일 뿐이라고 선을 긋는다.

기재부·행안부는 인지세 제도를 유지하고, 법원은 "우리 소관 아니다"라고 한다. 그 사이에서 국민만 불편을 감수한다. 누구도 나서지 않는 '개선 정지'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소상공인의 시간은 누가 보상하는가

은행 근무시간에 법원을 찾은 민원인 중 상당수는 바쁜 생업을 제쳐 놓고 달려간 소상공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에게 오전 11시는 점심 장사 준비 시간이다. 택시 기사에게는 수입이 발생하는 영업 시간이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이들에게 법원 민원 한 건을 처리하기 위해 가게 문을 닫고, 은행 영업시간을 맞춰 현금을 찾고, 법원 창구를 오가는 시간은 곧 생계와 직결된다.

비효율적인 민원 절차는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국민의 경제적 손실로 이어진다. 정부는 최대의 효율적인 민원 절차를 확보하는 데 노력해야 할 책무가 있다. 특히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시간은 곧 돈이다. 이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는 행정 절차를 방치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다.

이제는 바꿔야 할 때

680원 주차료도 카드로 내는 시대다. 1,000원 법원 수수료 때문에 ATM에서 현금을 뽑는 건 시대착오다. 'A4 출력물 제출'을 전자수입인지라고 부르는 것도 디지털 행정의 퇴보다.

바꿀 방법은 있다. 온라인 납부 후 전자문서로 자동 연동하면 된다. 종이 제출을 없애면 된다. 기재부·행안부·법원이 공동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면 된다. 기본 결제 방식을 카드와 계좌이체로 바꾸되, 디지털 약자를 위한 현금 옵션은 남겨두면 된다.

법원의 수입인지 제도는 지금 당장 바뀌어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민원 시스템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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