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범위 노동쟁의권 탄생…헌재 소원·보완입법 격돌 예고

[프랜사이트 = 이찬희 기자]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이 한국 노사관계의 지형을 완전히 뒤바꿀 전망이다. 노동계는 "파업권 보장의 역사적 전환점"이라며 환영했지만, 재계는 "기업 경영권 붕괴"라며 즉각 반발에 나서 갈등 격화가 예상된다.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되는 이번 개정안을 둘러싼 노사 간 입장차는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사용자 범위 대폭 확대…원청도 교섭 테이블로
이번 개정안의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사용자 범위 확대다. 기존에는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한 사업주만이 교섭 대상이었으나, 개정 후에는 근로조건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원청기업도 교섭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정부는 "근로조건과 관련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경우에만 인정된다"고 해석 기준을 제시했다. 하지만 재계는 사용자 범위가 여전히 모호해 법적 분쟁이 불가피하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기업 본사가 협력업체 직원들의 노조와 직접 교섭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영 전반 파업 가능" 쟁의 대상 대폭 확장
노동쟁의(파업) 대상 범위도 크게 넓어졌다. 기존에는 임금·근로시간·복지 등 근로조건에 한정됐던 파업 사유가, 개정 후에는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까지 포함하게 된다.
이에 따라 구조조정이나 하청 문제, 사업장 이전 등 경영 전반에 대해서도 파업이 가능해진다. 정부는 "정리해고 등 근로조건 변경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경우만 쟁의 대상"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재계는 "영향을 주는 사업 경영 범위가 불분명하다"며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교섭 창구 단일화 절차 '법적 공백' 논란
원청과 하청 간 교섭 창구 단일화 절차가 개정안에 명시되지 않은 점도 큰 논란거리다. 현행법은 한 사업장에 복수 노조가 있으면 대표 노조를 정해 교섭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원청-하청 교섭에서는 이런 절차가 없어 실무상 혼란이 예상된다.
이로 인해 하나의 원청기업이 수십 개 하청업체의 각기 다른 노조들과 개별적으로 교섭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세계 최대 범위 노동쟁의권 국가로 부상
이번 개정으로 한국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노동쟁의 범위가 가장 넓은 국가가 될 전망이다.
2021년 기준 주요국 노사관계제도를 살펴보면, 한국은 대체근로를 금지하면서도 직장점거와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을 모두 허용하고 있다. 반면 미국·일본·독일·영국은 대체근로를 허용하되 불법 점거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위법으로 규정하고 있어 대조적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노동쟁의권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수준으로 평가받게 됐다.
재계 "투자 위축·경쟁력 추락" 강력 경고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실질적 경영권 침해로 기업 투자 의욕이 크게 꺾일 것"이라며 "글로벌 경쟁에서 한국 기업이 더욱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고 강력 반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불법 파업조차 손해배상을 제대로 청구하기 어려워져 무책임한 파업이 만연할 우려가 크다"며 즉각적인 보완 입법을 촉구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기업은 예측 가능한 법 환경 속에서 투자한다"며 "지금처럼 경영권을 위축시키는 법안은 오히려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노동계 "30년 만의 파업권 해방" 환영
반면 노동계는 적극적인 환영 입장을 밝혔다. 민주노총은 "30년 만에 찾은 파업권 보장의 전기"라며 "과거 수십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은 사실상 파업권 무력화 수단이었다"고 평가했다.
한국노총도 "정당한 파업권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며 "실질적 결정권은 원청에 있으므로 당연히 교섭 창구를 넓혀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노동계는 특히 그동안 원청의 '사용자성 회피'로 인해 제대로 된 교섭이 이뤄지지 않았던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헌재 소원 vs 보완 입법 격돌 예고
재계는 헌법재판소 헌법소원 제기와 함께 관련 보완 입법 추진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경영계는 특히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의 모호성을 문제 삼아 위헌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노동계는 법안의 조기 정착을 위한 후속 조치 마련에 집중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으면 노사갈등만 더욱 심화될 수 있다"며 신중한 후속 조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사관계 전문가인 한 교수는 "노동자 권리 보장을 강화한다는 명분 아래 처리됐지만,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과 한국 경제 전반의 경쟁력 약화라는 그림자도 함께 드리우고 있다"며 "향후 국회가 어떤 보완 입법과 사회적 합의를 마련할지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법안 통과로 한국의 노사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면서, 기업들의 경영 전략과 노조의 투쟁 방식 모두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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