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시·물산장려·민족기업... 3.1 운동이 촉발한 경제 독립 운동의 계보
[프랜사이트 = 우승련 기자]
1919년 3월 1일. 한반도 전역에서 2천만 민중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우리는 이 날을 흔히 일제의 정치적 압제에 맞선 항거로 기억한다. 그러나 역사 기록을 들여다보면, 그 함성의 뿌리에는 정치적 독립만큼이나 절박한 다른 외침이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경제적 생존'이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3.1 운동을 "민족사적·사상사적·경제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남긴 사건"으로 평가한다. 이 가운데 경제사적 의의는 오늘날까지도 상대적으로 덜 조명받아왔다. 3.1 운동 107주년을 맞는 지금, 그 경제적 함의를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수탈의 구조 — 1910년대 조선 민중의 경제 현실
일제는 1910년 한반도를 강점한 직후부터 조선의 경제 생태계를 근본부터 뒤흔들었다. 3.1운동기념재단의 사료에 따르면, 일제는 '회사령'을 공포해 조선인의 자생적 기업 설립을 원천 봉쇄했으며, '토지조사사업'으로 농민 다수를 소작농으로 전락시켜 내수 시장 자체를 황폐화했다. 그 결과 "농민을 비롯한 민중의 생활은 크게 악화되었으며,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지가 높아졌다"고 기록은 전한다.
이런 배경에서 3.1 운동에 참여한 이들은 지식인만이 아니었다. 농민, 노동자, 시장 상인, 행상인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외친 것은 단순히 정치적 주권만이 아니라, '내 땅에서 내 장사를 할 권리'이기도 했다.
철시(撤市) — 상인들이 선택한 저항의 방식
만세 시위와 함께 전국 시장 상인들이 택한 저항이 있었다. 바로 '철시(撤市)', 즉 자발적인 가게 문 닫기였다. 서울 종로의 시전 상인들부터 지방 장터의 노점상까지 일제히 영업을 중단하고 일제의 유통 질서에 균열을 냈다. 당장의 수입을 포기하면서까지 공동의 가치를 선택한 이 결단은, 당시 수탈 체제가 개인의 생계를 얼마나 옥죄고 있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철시의 파급력은 상징적이었다. 거국적인 저항의 물결을 마주한 일제는 무단통치를 이른바 '문화통치'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고, 1920년에는 회사령을 철폐했다. 물론 회사령 철폐의 본질적 목적은 일본 자본의 조선 진출을 수월하게 하려는 것이었지만, 조선인 자본가와 상인에게도 사업체 설립의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민중의 저항이 이끌어낸 현실적 변화였다.
저항의 진화 — 물산장려운동과 민족기업의 탄생
3.1 운동 이후 경제적 자립을 향한 움직임은 더욱 조직적으로 발전했다. 1920년 평양에서 조만식을 중심으로 시작된 ‘물산장려운동’이 대표적이다. '조선 사람 조선 것'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 운동은 1923년 전국 규모의 조선물산장려회 창립으로 이어졌다. 경성방직, 백산상회 등 민족 기업들이 성장하는 발판이 되었으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를 "한국경제사의 내재적 발전의 원동력"으로 평가한다.
물론 이 운동이 완전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수공업 중심의 조선 산업은 생산력에 한계가 있었고, 수요 급증에 편승한 일부 상인들의 가격 인상으로 비판도 받았다. 결국 1937년 총독부 명령으로 강제 해산됐다. 그러나 좌절 속에서도 민족 경제 자립을 향한 열망이 제도적 운동으로 뿌리내렸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107년이 지난 오늘, 3.1 운동의 경제적 유산
3.1 운동의 역사적 의의는 세 차원에서 정리된다. 우선 민족사적으로는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의 직접적 계기가 됐다. 사회적으로는 종교·계층·지역을 초월한 '연대'의 원형을 보여주며 근대적 시민의식의 토대를 놓았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수탈 구조에 맞선 집단적 저항이 민족 경제 자립 운동의 씨앗이 됐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로운 경제 활동의 권리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107년 전, 가게 문을 걸어 잠그고 거리로 나선 상인들, 조선 물건을 사 쓰자고 외친 민중, 그리고 총독부의 탄압에도 민족 기업을 키워낸 이들의 분투가 그 바탕에 있다. 삼일절이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오늘의 경제 현실을 돌아보는 성찰의 날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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