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원 규모 매각 러시 속 갈등·규제 리스크가 발목 잡는다
[프랜사이트 = 특별취재팀]
한국 프랜차이즈 시장에 전례 없는 매각 쓰나미가 몰아치고 있다. 사모펀드들이 3~5년 투자 만료 시점을 맞아 보유 브랜드들을 대거 시장에 내놓으면서다. KFC코리아, 버거킹코리아, 피자헛코리아 등 업계 대표 브랜드들이 줄줄이 '매물' 딱지를 달고 새 주인을 찾고 있지만, 과거와 달리 쉽게 팔리지 않고 있다. 강화된 가맹사업 규제와 점주 갈등이라는 '숨겨진 폭탄'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매각이 진행 중이거나 검토 단계에 있는 주요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기업가치만 해도 3조원에 육박한다. 하지만 이들 브랜드 대부분이 본사와 가맹점주 간 갈등, 공정거래위원회 제재, 법정 분쟁 등의 복합 리스크를 안고 있어 매각 과정이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과거에는 브랜드 파워와 매출 규모만 보고 투자했지만, 이제는 가맹점 갈등 이력부터 규제 리스크까지 모든 것을 까발려야 한다"며 "실사 과정이 과거보다 3배 이상 까다로워졌다"고 토로했다.
KFC코리아, 2년 만의 '속전속결' 매각
가장 주목받는 매물은 KFC코리아다. 2023년 오케스트라PE가 약 2천억원에 인수한 지 불과 2년 만에 3~4천억원 규모로 매각을 추진하고 있어 사모펀드의 전형적인 '빠른 회수' 전략을 보여준다.
오케스트라PE의 KFC 개조 작업은 과감했다. 40년간 고수해온 직영점 위주 운영을 가맹점 중심으로 180도 바꿨다. 대형 매장보다는 소형 매장, 단일 점포보다는 다점포 운영자를 늘려 빠른 확장에 나섰다. 그 결과 점포 수는 크게 늘었고 본사 수익성도 단기간에 개선됐다.
문제는 이런 급작스러운 변화가 매각 과정에서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직영에서 가맹으로의 전환은 본사와 가맹점 간 수익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어서, 잠재적 분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각 관련 실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인수 후보들이 가장 예민하게 보는 부분이 가맹점주들의 수익성과 만족도다. 급격한 사업모델 전환 과정에서 불만이 누적됐을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전문가는 "KFC의 가맹 전환 자체는 성공적이지만, 새로운 인수자 입장에서는 가맹점주와의 관계가 안정적으로 정착됐는지를 면밀히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버거킹, 4년째 계속되는 매각 '미스터리'
더욱 복잡한 상황은 버거킹코리아다. Affinity Equity Partners가 소유한 버거킹은 2021년부터 매각을 시도했지만 4년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영원한 매물'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버거킹 매각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여러 겹으로 얽혀 있다. 우선 코로나19 이후 변화한 외식 소비 패턴에 적응하지 못한 점이 크다. 배달 중심으로 바뀐 시장에서 매장 내 식사에 특화된 기존 모델의 한계가 드러났고, 맥도날드 대비 상대적 열세도 투자 매력도를 떨어뜨렸다.
여기에 최근 프랜차이즈 규제 강화로 운영 복잡성이 늘어난 것도 부담 요소다. 광고비 분담에서 가맹점주 과반 동의를 받아야 하고, 의무품목 공급가격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는 등 새로운 규제 준수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버거킹의 경우 브랜드 자체는 여전히 가치가 있지만, 실적 턴어라운드와 함께 새로운 규제 환경에 맞는 운영 체계 구축이 선행돼야 매각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피자헛, 법정관리 중 '화급한' 신주인 찾기
가장 절박한 상황에 놓인 것은 피자헛코리아다. 2024년 말 법정관리에 들어간 피자헷은 삼일PwC를 매각 주관사로 선정해 법정관리 인가 이전에 새 주인을 찾는 '응급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피자헛의 경우 단순한 기업 매각이 아닌 위기 기업 인수 성격이 강하다. 법원이 원부자재 '추가 수수료' 부과를 부당하다고 판결하면서 가맹점주들과의 신뢰 관계가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다. 이 판결은 다른 프랜차이즈 브랜드 가맹점주들의 집단 소송 움직임까지 촉발해 업계 전체를 긴장시키고 있다.
새로운 인수자는 브랜드 정상화와 가맹점 네트워크 재건이라는 이중 과제를 떠안아야 한다. 특히 법정관리를 담당하는 관리인 측이 "가맹망 안정성과 점주 영업권 보장"을 매각 조건으로 명시한 상황에서 인수 희망자들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구조조정 전문가는 "피자헛 인수는 단순한 자산 매입이 아니라 가맹점주들과의 관계 회복까지 책임져야 하는 '종합 패키지'"라며 "그만큼 인수 조건이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피자나라치킨공주, 고평가 논란 속 재시동
피자나라치킨공주도 2023년부터 매각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순탄하지 않다. 당초 2천억원대 기업가치를 제시했지만 시장의 냉담한 반응으로 가격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피자나라치킨공주의 복합 브랜드 특성이 매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본다. 치킨과 피자를 동시에 취급하는 구조상 운영 복잡성이 높고, 브랜드 포지셔닝도 애매하다는 평가다. 여기에 실제 가맹점 운영 성과나 점주 만족도가 높은 밸류에이션을 뒷받침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매수자들이 보는 '새로운 체크 포인트'
이처럼 프랜차이즈 매각 시장이 어려워진 배경에는 매수 희망자들의 실사 기준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있다. 과거 매출액이나 점포 수 등 양적 지표 위주의 평가에서 질적 리스크 평가로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이다.
현재 투자자들이 프랜차이즈 매입 때 필수적으로 확인하는 항목들을 보면 이런 변화가 뚜렷하다. ▲의무품목 공급 구조의 투명성과 법규 준수 여부 ▲광고·판촉비 분담의 적법성 ▲가맹계약 해지나 갱신 조건의 합리성 ▲공정위 제재나 법정 분쟁 이력 ▲최근 가맹점주 단체 활동이나 집단 불만 현황 등이 핵심 체크 포인트가 됐다.
특히 사모펀드들이 즐겨 사용하던 '가맹점 비용 전가'를 통한 수익성 개선 방식이 새로운 규제로 차단되면서, 인수 후 수익 창출 방안을 완전히 새로 짜야 하는 상황이다.
한 사모펀드 관계자는 "예전에는 인수 후 광고비나 원자재 마진을 올려 빠르게 수익을 낼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며 "브랜드 가치 제고나 운영 혁신 등 정공법으로만 승부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상생 모델만이 살아남는다
결국 지금의 프랜차이즈 매각 시장은 과거와 완전히 다른 룰로 돌아가고 있다. 단순한 규모 확장이나 비용 압박을 통한 수익 개선이 아닌, 본사와 가맹점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모델이 있어야만 매수자를 찾을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었다.
이런 변화는 단기적으로는 매각을 어렵게 만들지만, 장기적으로는 프랜차이즈 생태계를 더욱 건전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업계는 평가하고 있다. 결국 투명하고 공정한 가맹 운영 시스템을 갖춘 브랜드만이 새로운 투자자를 만나고 지속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전문가는 "지금 매각 시장에 나온 브랜드들의 성패는 재무적 성과보다는 가맹점주와의 상생 체계를 얼마나 잘 구축했느냐로 결정될 것"이라며 "앞으로 더 많은 브랜드가 매각 대열에 합류할 텐데,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는 브랜드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모펀드들의 투자 만료가 본격화되면서 프랜차이즈 매각 시장의 격변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과거의 성공 공식이 통하지 않는 새로운 시대, 과연 누가 웃고 누가 울게 될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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