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프랜차이즈 새 성장동력 모색하는 글로벌 외식업계의 전략 변화 주목

[프랜사이트 = 박세현 기자] 필리핀의 대표 패스트푸드 기업 졸리비 푸드 코퍼레이션(Jollibee Foods Corporation)이 치킨 프랜차이즈 노랑통닭 인수를 최종 포기했다. 졸리비와 국내 사모펀드 엘리베이션에쿼티파트너스 연합이 8월 8일 매도인 측에 노랑통닭을 인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달하면서 약 2년간 이어진 인수 협상이 막을 내렸다.
졸리비는 2023년 말 컴포즈커피를 4700억원에 성공적으로 인수한 바 있어, 노랑통닭 인수 무산은 한국 시장에서의 두 번째 도전이 좌절된 것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졸리비의 글로벌 확장 전략 자체는 세계화를 꿈꾸는 국내 프랜차이즈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학습 모델을 제시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2년 협상 끝에 최종 결렬된 노랑통닭 인수
노랑통닭 매각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2025년 6월 졸리비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을 당시 거래가는 1500억원 안팎으로 거론됐다. 하지만 8월 중순 실사를 마친 직후 원매자 측에서 매각가 인하를 요구하면서 협상에 난항을 겪었다.
결렬의 가장 큰 원인은 브라질 AI(조류독감) 사태를 해석하는 양측의 시각차였다. 올해 브라질 AI 여파로 국내 닭고기 수입이 차질을 빚으며 원가가 급등하자 졸리비는 이를 노랑통닭의 수익성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영구적 리스크로 판단했다.
반면 노랑통닭 최대주주 측은 회사의 경영 성과가 뛰어난 만큼 적절한 기업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는 곳과 거래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양측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서 결국 협상이 결렬됐다. 이는 졸리비의 컴포즈커피 인수 성공 사례와는 대조적이다. 컴포즈커피는 인수 후 졸리비의 2024년 3분기 글로벌 매출을 전년 동기 대비 20.5% 끌어올리는 등 뚜렷한 성과를 보였다.
한국 기업이 주목해야 할 졸리비의 글로벌 전략
인수는 무산됐지만, 졸리비가 보여준 글로벌 확장 접근법은 여전히 배울 점이 많다.
1. 인수합병 중심의 해외진출 모델
졸리비의 핵심 전략은 '검증된 현지 브랜드 인수를 통한 글로벌 확장'이다. 자국 필리핀에서는 현지화 전략으로 맥도날드를 제치고 시장 1위를 차지했지만, 해외에서는 처음부터 브랜드를 구축하는 대신 유망한 현지 브랜드를 적극 인수해왔다.
2018년 미국 '스매시버거', 2019년 '커피빈'과 베트남 '하이랜드 커피', 2021년 홍콩 미슐랭 원스타 딤섬 전문점 '티모완' 인수가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단순한 햄버거 체인에서 피자, 중식, 베이커리, 커피까지 아우르는 종합 외식 기업으로 성장했다. 국내 프랜차이즈들이 해외 진출 시 직면하는 현지 시장 이해 부족과 브랜드 인지도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는 효과적인 방법론을 보여준것이다.
2. 철저한 실사와 리스크 관리
노랑통닭 인수 무산 과정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 졸리비는 실사 과정에서 발견된 브라질 AI 사태로 인한 원가 급등과 수익성 악화 우려를 근거로 매각가 조정을 요구했다. 감정적 판단보다는 철저한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 접근이었다.
특히 외식업의 경우 식재료 가격 변동, 질병 등 예측하기 어려운 외부 변수가 많기 때문에 이런 체계적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다. 한국 기업들이 해외 M&A를 추진할 때도 단순히 매출이나 브랜드 가치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리스크 요인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3. 현지화 성공 브랜드를 알아보는 안목
졸리비가 한국에서 컴포즈커피와 노랑통닭을 타깃으로 삼은 배경에는 '현지화 성공 브랜드'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다. 졸리비 자체가 필리핀에서 '졸리 스파게티', '얌버거' 등 현지 입맛에 맞춘 메뉴로 맥도날드를 이긴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표준을 그대로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소비자의 취향을 사로잡는 것이 시장 성공의 핵심이라는 철학이다. 한국 기업들이 해외 진출 시 현지 파트너를 선택할 때도 이런 관점이 필요하다.
4. 포트폴리오 다각화 전략
졸리비의 또 다른 특징은 업종 다각화를 통한 포트폴리오 구성이다. 햄버거에서 시작해 커피, 중식, 베이커리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특정 업종의 침체나 위기에 대한 리스크를 분산했다. 실제로 컴포즈커피 인수는 성공했지만 노랑통닭 인수는 무산됐음에도 졸리비의 전체 사업에는 큰 타격이 없다. 다각화된 포트폴리오 덕분이다.
K-프랜차이즈가 나아갈 방향
시스템 경쟁력이 글로벌 진출의 열쇠
국내 프랜차이즈들은 해외 진출을 꿈꾸기 전에 먼저 내실을 다져야 한다. 매뉴얼화된 운영 시스템, 품질 관리 체계, 가맹점 지원 시스템 등을 구축해 글로벌 기업들이 탐낼 만큼 매력적인 브랜드로 만들어야 한다. 졸리비가 한국 브랜드에 주목한 이유는 맛만이 아니라 체계적인 운영 시스템과 확장성 때문이다. 수많은 매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일관된 품질을 유지하는 시스템이 글로벌 확장의 핵심 자산이라는 것이다.
외부 리스크에 대한 대응 체계 구축
노랑통닭 인수 무산 사례는 외식업계가 직면한 다양한 리스크를 보여준다. 브라질 AI 사태 같은 예측하기 어려운 외부 변수가 기업 가치 평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프랜차이즈들도 공급망 다변화, 대체 식재료 확보, 가격 변동 대응 체계 등을 갖춰 외부 충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글로벌 파트너십 전략 수립
졸리비의 사례는 M&A가 단순히 매각이 아니라 글로벌 성장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임을 보여준다. 비록 노랑통닭 인수는 무산됐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 치킨 시장의 잠재력과 글로벌 확장 가능성은 충분히 입증됐다. 한국 프랜차이즈들도 해외 기업과의 M&A를 브랜드를 파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성장 전략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글로벌 트렌드에 대한 이해와 해외 파트너들과의 네트워킹이 필수다.
실패에서 배우는 성공 전략
노랑통닭 인수 무산은 졸리비에게는 일시적 좌절일지 모르지만, 한국 프랜차이즈 업계에게는 소중한 학습 기회다. 글로벌 기업이 한국 브랜드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고, 어떤 리스크 요인을 중시하는지를 생생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특히 외식업계가 직면한 공급망 리스크, 원가 변동성 등의 문제를 어떻게 관리하고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교훈을 제공했다. K-프랜차이즈의 글로벌 진출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졸리비가 보여준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접근법을 참고해 한국만의 독특한 글로벌 확장 모델을 만들어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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