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프랜차이즈·플랫폼 '공존 생태계' 전망... "소비자 선택권 시대 개막"

[프랜사이트 = 특별취재팀 박세현·허양 기자]
동네 세탁소의 위기와 모바일 플랫폼의 약진으로 요동쳤던 한국 세탁 시장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한때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했던 업계 지형이 재편되며, 각 사업자가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는 '공존의 생태계'로 변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미래 세탁 시장의 승패를 가를 핵심 요소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스마트팩토리 기술', '소비자 가치 전환'을 꼽는다.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따라 세탁 서비스 '선택적 소비'
미래 세탁 시장을 이해하는 열쇠는 '평균적 소비자'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에 따라 명확히 구분된 그룹으로 분화하고 있다.
'편리미엄' 추구형은 시간을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여기는 맞벌이 부부와 1인 가구, 전문직 종사자들이다. 이들은 24시간 비대면 주문과 문 앞 수거·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바일 플랫폼을 선호한다.
'가성비' 중시형은 합리적 가격에 신뢰할 수 있는 품질을 원하는 가장 폭넓은 소비자층으로, 수십 년간 검증된 프랜차이즈 브랜드와 오프라인 매장의 접근성을 중시한다.
'전문성·신뢰' 추구형은 고가 의류나 특수 소재 세탁 시 가격이나 속도보다 '전문가의 손길'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최근 세탁 관련 분쟁 중 품질·손상 문제 비중이 80% 이상을 차지해, 소비자들이 품질 보증과 신뢰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본다는 것을 방증한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친환경 세제 사용 여부, 제로웨이스트 포장, 지역사회 상생 같은 가치소비 기준이 세탁 서비스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마트팩토리로 '표준화된 품질' 시대 열어
세탁업 혁신의 중심에는 스마트팩토리화가 자리한다. RFID(무선인식) 기반 의류 추적 시스템은 고객 의류의 이동 경로를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하게 만들었다. AI 품질검수는 세탁물의 오염도와 손상 여부를 자동 감지해 불량률을 최소화한다. IoT 세탁기와 건조기는 원격 모니터링과 에너지 효율 최적화를 구현했다.
무인점포화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코인빨래방은 IoT와 결합해 스마트폰 앱으로 원격 제어와 예약 기능을 제공한다. 런드리고는 자체 EPC(설계·조달·건설) 역량으로 스마트팩토리를 설계·운영하며, 세탁특공대는 자동 분류와 AI 검수 공정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 집중식 스마트팩토리는 규모의 경제를 통한 원가 절감과 함께, 어느 지역에서 맡겨도 동일한 표준화된 품질을 제공하는 장점이 있다. 이는 기존 세탁 서비스의 품질 편차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으로 평가받는다.
ESG 경영, '선택 아닌 필수' 생존 전략으로
세탁업은 본질적으로 에너지와 물 사용량이 많은 산업이라 ESG 관점에서의 혁신이 더욱 절실하다.
환경(E) 측면에서는 저수·저온 세탁 공법, 재생에너지 기반 건조기, 친환경 세제와 포장재 도입이 핵심이다. 소비자 인식이 높아지면서 인체와 환경에 무해한 친환경 세제를 사용하고 재활용 가능한 포장재를 제공하는 세탁소들이 주목받고 있다.
사회(S) 측면에서는 지역사회 고용 창출, 취약계층 대상 무료 세탁 서비스 등 상생 프로그램이 중요해지고 있다. 동네 세탁소는 세탁물을 주고받는 공간을 넘어 지역 커뮤니티의 사랑방 역할을 하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
지배구조(G) 측면에서는 투명한 정보 공개와 가맹점과의 거래조건 공정화가 요구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필수품목 거래 투명화, 거래조건 협의제 도입 등 제도를 강화하며 프랜차이즈 본사를 직접 규율하고 있다.
정은영 ESG 컨설턴트는 "세탁업은 에너지와 물 소비가 많은 산업이다. 친환경 공정과 에너지 절감 장비 도입은 단순히 이미지 전략이 아니라 앞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을 좌우하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리미엄·친환경 시장 성장... 틈새 전략 주목
소득 수준 향상과 패션 시장 성숙으로 소비자들은 더 적게 사더라도 더 좋은 옷을 오래 입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고가 의류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프리미엄 세탁 시장 성장으로 이어진다.
서울 강남의 한 세탁소는 '명품 전문'을 내걸고 명품 가방, 신발, 의류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한다. 일반 세탁소의 몇 배에 달하는 가격에도 섬세하고 전문적인 케어를 원하는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유모차나 카시트, 운동화처럼 가정에서 세탁하기 까다로운 품목을 전문적으로 세탁하며 틈새시장을 개척한 사례도 늘고 있다.
세탁특공대는 '특수세탁·프리미엄 항목' 확장을 통해 마진을 끌어올리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 세탁업, '옴니채널'로 수렴 전망
김도현 유통테크 연구소장은 "소비자는 편리함을 넘어 품질과 가치를 요구하고 있다. 기술과 ESG를 결합해 안심할 수 있는 세탁 서비스를 제공하는 브랜드가 결국 승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에서는 미래 세탁업이 세 가지 시나리오로 전개될 것으로 본다.
첫째는 옴니채널 프랜차이즈다. 전국망을 가진 프랜차이즈가 앱 주문과 픽업 서비스를 흡수해 디지털 전환으로 경쟁력을 강화한다. 고객이 앱 주문, 매장 락커 맡김, 직접 방문 상담 등 어떤 채널에서도 끊김 없는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다.
둘째는 B2B 중심 직영형 O2O다. 스마트팩토리와 물류망 기반으로 호텔·기업·레지던스 세탁 시장을 장악한다. 단순 세탁 서비스를 넘어 의류 관련 모든 것을 관리하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전략이다.
셋째는 하이퍼-스페셜리스트형 독립 세탁소다. 명품 의류, 가죽·모피, 아웃도어 의류, 운동화 등 특정 카테고리의 최고 전문가가 되어 블로그나 소셜미디어로 전문성을 알리고, 지역을 넘어 전국에서 택배로 세탁물을 받는 '전국구 전문점'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 세 모델이 경쟁과 융합을 반복하며 결국 '옴니세탁(Omni-laundry)'이라는 통합된 방향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공존의 시대, 소비자가 왕"
세탁 시장의 격동기는 끝을 향해 가고 있다. 한 명의 거인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 대신,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공존하는 새로운 생태계가 열리고 있다. 편리함을 원하면 모바일 앱을, 합리적 품질을 원하면 프랜차이즈를, 최상의 관리를 원하면 동네 장인을 찾으면 된다. 이 치열한 경쟁과 혁신의 최종 승자는 결국 소비자다. 자신의 가치관과 필요에 따라 최적의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활짝 열렸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본사는 ESG와 디지털을 접목해 가맹점과 함께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을 세워야 한다. 독립 세탁소는 지역성과 자율성을 살리면서 플랫폼 제휴를 통해 생존 전략을 찾아야 한다. O2O 플랫폼은 기술과 물류 효율성을 넘어 ESG와 소비자 신뢰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앞으로의 승자는 단순히 고객의 옷을 깨끗하게 만드는 브랜드가 아니라, 고객의 가치와 신뢰를 세탁해주는 브랜드일 것"이라며 "변화하는 소비자의 마음을 가장 깊이 이해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기업이 새로운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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