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는 제출됐지만 피해는 막지 못했다… 6개월 시차가 만든 비극
"정보공개서는 뉴스가 되어야 한다"
[프랜사이트 = 허양 기자]
지난 9월, 외식 프랜차이즈 '한양화로'의 운영사 (주)바나바에프앤비 대표가 구속됐다. 피해 규모는 2000억 원, 피해자는 350여 명에 달했다. 사건이 터진 뒤 피해자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정보공개서에 그런 내용이 있는 줄 몰랐어요."
하지만 문제는 '몰랐다'가 아니었다. '알았어도 이미 늦었다'는 게 핵심이다.
공개된 수치 속 경고 신호… 하지만 한 달 뒤에야 확인됐다
한양화로 본사의 2024년 재무상태는 이미 심각했다. 자본잠식 -9억 원, 부채비율 200% 이상. 회계 전문가라면 누구나 '위험 신호'로 읽을 만한 수치였다. 그런데 이 정보가 담긴 정보공개서가 공정거래위원회 사이트에 올라온 건 2025년 9월 12일. 사건이 터진 지 거의 한 달이 지난 뒤였다.
공정위 제도상 프랜차이즈 본부는 매년 한 차례 정보공개서를 제출한다. 전년도 재무제표를 기반으로 작성하기 때문에 자료가 공개되는 시점엔 이미 6개월 이상의 시차가 생긴다. 그 사이 본사가 부실해져도, 신규 가맹점은 계속 생긴다.
"결국 예비 창업자들은 '이미 무너지고 있는 본사'에 돈을 맡기는 셈이죠." 한 프랜차이즈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서류는 냈지만, 시장은 알 수 없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4년부터 모든 프랜차이즈 본부에 정보공개서 제출 의무를 부과했다. 재무제표, 점포 현황, 가맹계약 조건, 소송 이력 등 핵심 정보를 공개하도록 한 것이다. 문제는 '제출'과 '공개' 사이의 시간차다. 본부가 회계결산을 마치고, 자료를 제출하고, 공정위가 검토해 승인하기까지 통상 6개월 이상 걸린다. 이 기간 동안 신규 가맹계약은 계속 체결된다.
결과적으로 가맹희망자들은 '작년 데이터'로 '올해 본사'를 판단하게 된다. 정보공개서는 살아 있는 보고서가 아니라, 지난해의 흑백사진이 되어버린다.
"공시했으니 우리 책임 아니다"… 면죄부가 된 제도
가맹본부 입장에서 정보공개서는 일종의 '법적 방패'다. "우리는 법에 따라 공시했습니다." 이 한마디로 책임을 피할 수 있다. 한양화로도 마찬가지였다. 공시된 재무제표는 분명 경고 수준이었지만, 본사는 출점을 멈추지 않았다. 공정위에 서류를 제출한 것만으로 법적 의무는 다한 셈이 됐다.
더 큰 문제는 정보공개서의 내용 검증이 '본사 자율'에 맡겨져 있다는 점이다. 외부 감사는 선택 사항이고, 본부가 작성한 수치가 그대로 게시된다. 정부는 '공개'만 요구할 뿐 '진실성 검증'은 하지 않는다.
"읽을 수 없는 정보는 공개가 아니다"
예비 창업자 대부분은 회계 전문가가 아니다. 정보공개서 양식은 난해하고, 중소 브랜드일수록 항목 누락과 공란이 많다. 한양화로의 정보공개서에는 '예상 영업이익' 항목이 비어 있었다. 대신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3개 이상 점포의 평균 실적 데이터가 없음." 사실상 '수익 검증 불가능'이라는 의미지만, 가맹희망자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공개는 됐지만, 전달은 되지 않은 셈이다.
"정보공개서는 뉴스가 되어야 한다"
프랜차이즈 산업은 매일 새로운 브랜드가 생기고 사라진다. 정보공개서만큼 시장의 건강을 보여주는 자료도 드물다. 하지만 이 데이터는 여전히 정부 사이트 깊숙한 곳에 묻혀 있다. 전문가들은 "공시된 정보가 언론과 소비자의 언어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어떤 브랜드의 부채비율이 급등했는지, 폐점률이 갑자기 높아졌는지, 점포당 평균 매출이 급락했는지를 누군가가 정리하고 알릴 때 비로소 제도는 기능한다는 것이다.
한양화로 사건 역시 언론이 늦게 움직였다. 이미 수백 명이 피해를 입은 뒤에야 '정보공개서에 이상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데이터는 있었지만, 해석이 없었다.
늦은 투명성은 투명성이 아니다
한양화로 사태는 정보공개서 제도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가맹본부의 실체가 한 달만 일찍, 혹은 몇 줄의 숫자만 더 명확히 공개됐더라면 2000억 원의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프랜차이즈 업계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정보공개서의 지연은 정보의 은폐와 다르지 않습니다. 숫자는 있었지만, 제도는 너무 늦었어요."
프랜차이즈 산업의 신뢰는 숫자에서 시작된다. 정보공개서가 진짜 의미의 '공개'가 되려면 정부는 신속한 실시간 공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고, 언론은 그 데이터를 읽어주는 해설자가 되어야 한다.
[저작권자ⓒ 프랜사이트 (FranSight).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