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AI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한국의 선택

[프랜사이트 = 우승련 취재본부장]
인공지능(AI) 기술이 산업 전반을 재편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글로벌 AI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1956년 다트머스 회의에서 시작된 AI 역사는 69년 만에 또 다른 전환점을 맞았다. 맥킨지가 연간 2.6~4.4조 달러 규모로 추산한 AI 시장에서 한국은 어떤 전략으로 승부할 것인가.
다트머스에서 시작된 69년 여정, 이제 파운데이션 모델 시대
1956년 여름, 미국 다트머스 대학에서 열린 한 연구 프로젝트가 오늘날 AI 혁명의 출발점이 되리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존 매카시(John McCarthy)가 주도한 '다트머스 여름 연구 프로젝트(Dartmouth Summer Research Project on Artificial Intelligence)'는 "사고하는 기계"라는 막연한 개념을 '인공지능'이라는 구체적인 학문 분야로 명명했다. 이후 69년간 AI는 기복을 거듭했다. 1960-70년대 상징적 추론 시대와 초기 신경망 연구, 1980-90년대 'AI 겨울'이라 불린 침체기, 그리고 1990년대부터 시작된 통계 학습의 부상까지. 진정한 변곡점은 2012년 토론토 대학의 알렉스 크리제프스키(Alex Krizhevsky)가 개발한 AlexNet이 ImageNet 대회에서 압도적 성능을 보이면서 딥러닝 혁명을 촉발한 때였다. 그리고 2017년, 구글이 발표한 트랜스포머(Transformer) 아키텍처는 또 다른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왔다. "Attention Is All You Need"라는 제목의 논문 한 편이 오늘날 ChatGPT, Claude, Gemini로 이어지는 대규모 언어모델의 토대가 된 것이다.
2025년, AI는 어디까지 왔나
현재 AI 시장은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고 있다. OpenAI의 GPT-5는 실시간 멀티모달 추론을 구현해 텍스트, 음성, 이미지를 동시에 처리하며, Anthropic의 Claude Opus 4.1은 각종 벤치마크에서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다. Meta는 Llama 3.1 모델을 오픈소스로 공개해 AI 민주화에 앞장서고, Google DeepMind는 여전히 프런티어 연구의 최전선에서 활약 중이다. 이러한 성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하드웨어 인프라의 폭발적 확장이다. NVIDIA는 2025 회계연도 2분기 데이터센터 매출에서 신기록을 경신했으며, 전 세계가 GPU 확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한국 정부도 약 1만 개 GPU를 확보해 국가 AI 컴퓨팅 센터 구축에 나서고 있다. OpenAI에 따르면 ChatGPT 사용자들은 주로 실용적 조언 구하기, 글쓰기 보조, 정보 탐색에 AI를 활용한다. 더 이상 AI는 실험실의 기술이 아니라 일상의 도구가 된 것이다.
규제도 본격화, EU AI법부터 한국 AI기본법까지
기술 발전과 함께 규제 체계도 구체화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4년 AI법(AI Act)을 채택해 위험도 기반 단계적 규제를 시작했다. 고위험 AI 시스템에는 엄격한 요구사항을, 제한된 위험 시스템에는 투명성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한국도 뒤지지 않는다. 2025년 1월 21일 공포된 'AI 기본법'은 2026년 1월 22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이 법은 국가 AI 컨트롤타워와 안전 연구소 신설, R&D 지원 체계 구축, 표준화 및 윤리 규범 마련을 핵심으로 한다. 맥킨지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생성형 AI는 전 세계 산업에 연간 2.6~4.4조 달러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잠재력을 지녔다. 이는 글로벌 GDP의 3-4%에 해당하는 규모다.
산업 현장의 AI, 이미 현실이 됐다
-제조업: 스마트 팩토리에서 디지털 트윈까지
제조업 현장에서 AI는 이미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컴퓨터 비전 기반 품질 검사, 센서 데이터를 활용한 예지정비, 디지털 트윈 기술이 전 세계 공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POSCO가 선두 주자다. 철강 제조 과정에서 AI를 활용한 스마트 제철 프로세스와 공급망 최적화로 생산성을 크게 높였다. 현대자동차는 NVIDIA Omniverse 플랫폼을 도입해 가상 공장 시뮬레이션과 로보틱스 시스템을 통합 운영하고 있다.
-물류: 로봇이 사람보다 빨라졌다
물류 산업의 AI 도입도 가속화되고 있다. 수요 예측부터 배송 경로 최적화, 창고 내 로봇 피킹까지 전 과정에 AI가 스며들었다. CJ대한통운의 성과는 눈에 띈다. AI 기반 로봇 피킹 시스템을 도입한 결과 시간당 600개 물품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이는 기존 인력 대비 3배 이상 향상된 생산성이다.
-금융: KYC에서 코드 현대화까지
금융권에서는 생성형 AI를 고객 신원 확인(KYC) 및 자금 세탁 방지(AML) 업무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또한 레거시 코드의 현대화 작업에도 AI가 적극 투입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중소기업 지원 업무와 AI 상담 서비스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 AI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헬스케어: AI 의사가 암을 찾는다
의료 분야에서는 내시경을 통한 암 진단, 의료 영상 분석, 설명 가능한 AI(XAI) 기반 진단 보조 시스템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대학교병원을 비롯한 주요 의료기관들이 AI 연구센터 설립에 나서고 있어 향후 더 큰 성과가 기대된다.
한국 AI 생태계의 현주소
-글로벌 vs 국내 플레이어들
글로벌 AI 시장은 OpenAI(GPT_5, GPT-4o), Google DeepMind, Anthropic(Claude Opus 4.1, Claude Sonnet 4.0), Meta(Llama 3), Amazon(Bedrock), NVIDIA가 주도하고 있다. 한국도 만만치 않다. 네이버는 HyperCLOVA X로 한국어 특화 대화형 AI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으며, 카카오브레인의 KoGPT, LG AI연구원의 EXAONE 3.0, SK텔레콤의 A.X 시리즈, 삼성전자의 GAUSS 등이 경쟁하고 있다.
-정부의 AI 마스터플랜
한국 정부는 2019년 '국가 AI 전략'을 발표한 이후 지속적으로 정책을 강화해왔다. 인프라 구축, 인재 양성, 산업 적용이라는 3대 축을 중심으로 한 전략이다. AI 기본법 시행을 앞두고 국가 AI 컨트롤타워와 안전 연구소 설립 준비가 한창이다. 약 1만 개 GPU를 확보한 국가 AI 컴퓨팅 센터 구축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SK하이닉스, 리벨리온(Rebellions), 사피온(Sapeon) 등이 AI 전용 칩 개발과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HBM(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며 AI 붐의 직접적 수혜를 누리고 있다.
2025-2026 한국 AI 로드맵
-단기 실행 과제
올해와 내년은 한국 AI 생태계에 있어 결정적 시기다. 우선 국가 GPU 센터와 데이터 트러스트 구축이 완료돼야 한다. 또한 HyperCLOVA X, A.X, EXAONE, KoGPT 등 국산 대규모 언어모델의 기업 채택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제조업에서는 디지털 트윈과 예지정비 시스템 확산이, 금융에서는 AI 기반 리스크 관리와 고객 서비스 고도화가, 물류에서는 자동화 로봇과 경로 최적화 시스템 도입이, 헬스케어에서는 AI 진단 보조 시스템 상용화가 핵심 과제다.
-2026년 AI기본법 시행 대비
2026년 1월 AI기본법 시행을 앞두고 거버넌스 체계 정비와 규제 정합성 확보가 시급하다. 특히 EU AI법과의 호환성을 고려한 글로벌 스탠다드 준수가 중요하다. 딥페이크 등 AI 악용 방지를 위한 입법도 병행 추진되고 있어, 기술 발전과 안전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왜 지금이 기회인가
현재 AI 시장은 파운데이션 모델 성숙, 빅데이터 축적, 컴퓨팅 경제성 확보라는 세 요소가 완벽하게 맞물린 상태다. 더 이상 파일럿 프로젝트 단계가 아니라 본격적인 플랫폼 비즈니스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한국은 법제도 정비, 컴퓨팅 인프라 구축, AI 반도체 경쟁력, 국산 LLM 개발이라는 4대 영역에서 균형 잡힌 발전을 이뤄가고 있다. 특히 제조업, 자동차, 물류, 금융, 헬스케어 등 주력 산업에서 AI 적용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어 긍정적이다.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멀티모달 AI와 에이전트 시스템의 고도화, AI 거버넌스 강화, GPU와 AI 인재를 둘러싼 경쟁 격화가 향후 핵심 트렌드가 될 것이다.
1956년 다트머스에서 시작된 AI의 여정이 2025년 또 다른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번에는 한국이 관찰자가 아닌 게임 체인저로 나설 수 있을까. 그 답은 앞으로 2년이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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