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후폭풍에 기업도 '인건비 폭탄' 우려… 구조적 불공정 심화

[프랜사이트 = 특별취재팀 박세현, 허양 기자]
연금개혁안 통과 이후 청년층과 중장년층 간 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으며 '세대 간 제로섬 게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년연장을 둘러싸고 청년들은 "취업 기회 박탈"을, 중장년층은 "생존권 보장"을 외치며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것이다.
청년층 분노 폭발… "연금은 받지도 못할 세금"
3월 20일 연금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전국 대학가와 청년 커뮤니티는 들끓었다. 전국 대학생 대상 설문조사 결과 90%가 개혁안에 부정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도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인데, 정년이 65세까지 늘어나면 언제 정규직 자리를 잡을 수 있겠냐." 서울의 한 20대 직장인 김모씨(27)의 하소연이다. 그는 "정부가 청년을 위한 대책을 내놨다는 말이 너무 공허하다"고 토로했다.
온라인 반응은 더욱 격렬하다. 한 청년 커뮤니티에는 "보험료를 더 내는데 연금은 못 받는 구조라면 세금과 다를 게 없다"는 글이 수천 건 공유됐다. "연금은 기성세대 노후를 위한 보험일 뿐, 청년에게는 빚"이라는 댓글도 줄을 이었다. 청년들의 우려는 구체적 근거가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20~34세 미취업 청년의 61.2%가 "정년연장이 청년 채용 기회를 줄일 것"이라고 답했다. 이미 청년실업률이 OECD 평균을 웃도는 상황에서 정규직 일자리의 상당 부분을 중장년층이 장기 점유하고 있어 청년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로 다가온다.
중장년층 "65세까지 5년 공백이 더 무서워"
반면 중장년층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60세 정년과 65세 연금 수급 개시 사이 5년의 '소득 크레바스'에 대한 절절한 두려움을 드러내고 있다. 50대 직장인 박모씨(54)는 "만약 회사가 정년연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60세 은퇴 후 65세까지 소득이 없는 상황이 된다"며 "그 5년 동안 노후자금을 미리 꺼내 써야 하는데, 이게 더 큰 불안"이라고 말했다. 중장년층에게 정년연장은 생존을 위한 안전망이다. 연금 수급 전까지 최소한의 일자리를 보장받아야만 가계 붕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정년연장은 고령 근로자의 고용 안정과 생계 보장을 위한 필수 조치"라고 강조했다.
여론조사서도 확인된 '세대 간 정면대립'
세대 간 입장 차이는 여론조사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대 응답자의 72%가 정년연장에 반대한 반면, 50대 이상에서는 찬성이 64%로 높았다. 같은 정책을 두고 세대별 입장이 정반대로 갈린 것이다. '세대 간 제로섬 게임'이 현실화되고 있다. 청년층에게는 정년연장이 취업 기회 박탈로, 중장년층에게는 생존권 보장으로 해석되면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기업들 "인건비 폭탄" 우려… 청년고용 축소 불가피
기업들은 또 다른 딜레마에 빠졌다. 한국의 연공서열형 임금 구조상 정년연장은 곧 인건비 부담 증가를 의미한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정년연장은 단순히 한두 해 고용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인건비 부담을 5년간 추가로 떠안는 것과 같다"며 "청년 고용 축소는 불가피한 선택이 될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기업 입장에서는 청년과 중장년 모두 부담이다. 청년 고용은 줄어들고 고령 근로자의 임금은 늘어나는 이중고에 직면한 셈이다.
전문가들 "구조적 불공정 심화" 경고
전문가들은 이번 갈등을 단순한 정책 충돌이 아닌 구조적 불공정 문제로 진단한다. 연세대 복지국가연구센터 최영준 교수는 "젊은 세대는 더 내고 덜 받는 구조에 직면했고, 중장년층은 연금 공백기를 막기 위해 정년연장을 원한다"며 "같은 제도가 세대별로 정반대 효과를 낳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분석했다. 서울대 경제학부 김대일 교수는 "정년연장은 결국 임금체계 개편 없이는 해법이 될 수 없다"며 "성과 중심의 임금제, 직무 재설계 등 노동시장 전반의 혁신이 뒤따라야만 세대 갈등을 완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해법은 '세대 상생 모델' 구축
연금개혁과 정년연장은 세대 간 사회계약의 재편을 의미한다. 청년층의 "더 내고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절망과 중장년층의 "연금 개시 전 5년을 버틸 수 없다"는 두려움이 동시에 존재한다. 정부가 제시하는 해법이 어느 한쪽의 불만을 잠재우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연금개혁이 세대 갈등을 불러일으킨 이상, 정년연장 역시 단순한 연령 조정이 아닌 세대 간 상생 모델로 접근해야 한다. 임금체계 개편, 고령자 맞춤형 일자리 창출, 청년 고용 확대 정책이 종합적으로 병행되지 않는다면, 정년연장은 또 하나의 갈등 폭탄이 될 뿐이다. 정책의 성공은 세대 간 대립을 상생으로 전환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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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정년연장 및 연금정책 분석 5부작 중 2편입니다. 다음 3편에서는 기업의 인건비 부담과 연공서열 임금체계 개편 과제를 집중 조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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