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1,400억원 절감 효과 기대…애플·구글과 차별화 경쟁

[프랜사이트 = 특별취재팀 박세현, 허양 기자]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대응 전략이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 일부 기업은 직접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길을 택했지만, 삼성전자는 전혀 다른 접근법을 선택했다. 발행에 따른 리스크를 감수하는 대신, 이미 구축한 강력한 글로벌 인프라를 활용해 스테이블코인 확산을 주도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가 직접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로 나서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려면 막대한 준비금 확보는 물론 각국 정부의 까다로운 규제 요건을 만족해야 한다. 특히 최근 각국이 준비금 요건, 회계 감사, 투명성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상황에서 제조업 기반 글로벌 기업이 금융업까지 진출하는 것은 부담이 크다.
삼성전자는 이런 리스크를 피하면서도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확산자' 전략을 채택했다. 전 세계 수억 명이 사용하는 갤럭시 스마트폰과 삼성페이, 삼성월렛이라는 강력한 플랫폼을 보유한 만큼, 다른 발행사가 만든 스테이블코인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전달하는 채널 역할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갤럭시 스마트폰, 스테이블코인 대중화의 핵심 도구
삼성전자의 가장 큰 무기는 역시 하드웨어다. 연간 2억 대 이상 판매되는 갤럭시 스마트폰은 그 자체로 거대한 스테이블코인 확산 플랫폼이다. 갤럭시 스마트폰에는 Knox 보안 플랫폼과 블록체인 키스토어, 보안 실행 환경이 기본 탑재되어 있다. 이는 개인 키 관리와 지갑 보안 측면에서 글로벌 최고 수준의 신뢰성을 제공한다. 일반 사용자 입장에서는 별도의 하드웨어 지갑을 구매할 필요 없이 삼성 스마트폰만 있으면 스테이블코인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송금할 수 있다. 이런 접근성은 스테이블코인을 일반 대중에게 확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의 또 다른 강점은 삼성페이와 삼성월렛이다. 삼성페이는 이미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신용카드, 교통카드, 멤버십 카드 등 다양한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스테이블코인 기능이 추가되면 기존 사용자들은 별도의 학습 과정이나 앱 설치 없이 스테이블코인을 일상적인 결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삼성월렛은 디지털 신분증, 티켓, 자동차 키, 전자문서까지 통합 관리하는 '슈퍼 앱'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플랫폼에 스테이블코인 지갑 기능까지 포함되면, 삼성전자는 글로벌 디지털 결제 생태계에서 강력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룹 내부 정산 혁신으로 연간 1,400억원 절감 효과
삼성전자의 스테이블코인 전략은 소비자 결제 영역을 넘어 그룹 내부 운영 효율성 개선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삼성그룹은 전 세계 수백 개 계열사와 법인을 운영하며, 매년 막대한 자금을 해외 송금과 정산에 사용하고 있다.
기존 전통 금융망을 통한 송금은 높은 수수료와 긴 처리 시간이 단점이지만,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면 이런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업계 분석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계열사와 법인 간 정산에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할 경우 연간 최대 1억 달러, 한화로 약 1,400억원 이상의 비용 절감 효과가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환전 수수료, 중개 은행 수수료, 송금 지연에 따른 기회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수치다. 글로벌 기업 경영에서 이런 규모의 비용 절감은 경쟁력 강화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삼성SDS 넥스레저가 기술적 기반 제공
삼성전자의 스테이블코인 전략을 뒷받침하는 핵심 기술 인프라는 삼성SDS의 블록체인 플랫폼 '넥스레저'다. 넥스레저는 공급망 관리, 인증 시스템, 정산 자동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글로벌 블록체인 50대 기업에 선정될 만큼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삼성SDS는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포함한 블록체인 기반 정산 시스템을 계열사는 물론 외부 파트너에게도 제공하며, 삼성전자의 글로벌 인프라 전략을 기술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스마트 계약 기반 자동 정산 기능은 향후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 간 로열티 정산에도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글로벌 협력 투자로 생태계 확산 가속
삼성전자는 내부 기술 개발과 함께 글로벌 협력과 벤처 투자를 통해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확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스테이블코인 결제 스타트업 레인에 대한 투자다. 레인은 비자와 협력해 USDC 기반 결제카드와 자동 정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이를 통해 북미 시장 중심의 결제 혁신 실험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삼성전자는 코인베이스와 협력해 일부 국가에서 삼성페이에 암호화폐 결제 기능을 연동하는 서비스도 시작했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디지털 자산 결제 확산의 전초전 성격을 갖고 있다.
애플·구글과 차별화된 경쟁 전략
삼성전자의 스테이블코인 전략은 세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첫째, 발행 리스크를 피하고 전달자와 플랫폼 제공자로서 안정적으로 시장에 참여할 수 있다. 둘째, 이미 확보한 스마트폰과 결제망 인프라를 활용해 빠른 시장 확산을 유도할 수 있다. 셋째, 그룹 내부 정산 시스템을 혁신해 글로벌 기업 경쟁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다.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삼성전자는 애플페이, 구글페이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애플은 폐쇄형 생태계 운영에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개방성과 안드로이드 기반 높은 시장 점유율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구글은 페이팔과 협력해 PYUSD 확산을 추진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하드웨어와 플랫폼을 결합한 차별화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국내 시장 진출도 본격화 전망
삼성전자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발행자가 아닌 전달 플랫폼을 선택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글로벌 확산 속도를 높일 수 있는 합리적 선택으로 보인다. 갤럭시 스마트폰과 삼성페이, 삼성월렛, 그리고 삼성SDS의 넥스레저는 스테이블코인 대중화를 이끌 핵심 도구로 평가받고 있다.
향후 국내에서도 디지털 자산 관련 제도화가 진전되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삼성페이에 연동하는 서비스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국내 소비자와 가맹점, 소상공인에게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의 전략적 선택이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 판도와 국내 디지털 결제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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