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면 무너진다, 보여주면 살아남는다’...
‘집단소송이 만든 변화’, 미국에서 배우고 뛰어넘다...

[프랜사이트 = 우승련 기자]
2025년 봄, 한국 프랜차이즈 업계에 지진이 일었다. 17개 브랜드를 상대로 2,491명의 가맹점주가 집단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쟁점은 '차액가맹금'. 본부가 공급망을 통해 얻는 막대한 이익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는 단순한 법적 분쟁이 아니었다. 한국 프랜차이즈 산업 전체의 불투명한 관행이 수면 위로 떠오른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세계 최대 프랜차이즈 시장인 미국은 어떨까? 그들도 같은 문제를 겪었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하지만 미국이 선택한 길은 달랐다.
미국의 해법 - FDD Item 8, 투명성의 시작, 공개가 만든 차이
미국에도 본부가 공급으로 이익을 얻는 구조는 엄연히 존재한다. 맥도날드, 던킨, 세븐일레븐 모두 자체 물류망을 통해 마진을 붙이고, 공급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는다. 한국과 다른 점은 단 하나, 투명성이다.
미국 프랜차이즈 연방거래위원회(FTC)는 프랜차이즈 규칙을 통해 모든 공급 관련 이익을 계약 전에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한국이 "계약서에 명시했느냐"를 놓고 다투는 동안, 미국은 이미 수십 년 전 "사전에 투명하게 공개했느냐"를 제도화한 것이다.
FDD Item 8: 분쟁을 예방하는 마법의 조항
미국 프랜차이즈 시스템의 핵심은 FDD(프랜차이즈 정보공개서)다. 23개 항목으로 구성된 이 문서 중 'Item 8'이 공급망 투명성의 열쇠를 쥐고 있다. Item 8은 본부에게 ‘필수 구매 품목과 지정 공급업체’, ‘본부가 얻는 공급 마진과 이익률’, ‘공급업체로부터 받는 리베이트와 수수료’, ‘이러한 수익의 가맹점 환급 여부’, ‘총액 또는 매출 대비 비율’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한다.
이 규정이 강화된 배경에는 1980년대 리틀시저스 사건이 있다. 당시 본부가 리베이트를 공개하지 않아 FTC가 개입했고, 이후 미국 프랜차이즈 규제는 "사전 공개를 통한 분쟁 예방"이라는 명확한 방향을 잡았다.
퀴즈노스의 몰락: 공개만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투명한 공개가 만능은 아니다. 2006년 퀴즈노스(Quiznos) 사태가 이를 증명한다. 한때 5,000개 이상 매장을 운영하던 샌드위치 프랜차이즈 퀴즈노스는 FDD에 리베이트를 성실히 공개했음에도 가맹점주들의 대규모 집단소송에 직면했다. 가맹점주들은 "본부가 자회사를 통해 음식과 장비에 과도한 마진을 붙였고, 다른 공급업체 선택권을 원천 차단했다"고 주장했다.
법률전문매체 Baker Donelson에 따르면, 핵심 쟁점은 "공급 가격이 시장가보다 현저히 높아 가맹점의 수익성을 악화시켰다"는 점이었다. 퀴즈노스는 2009~2010년 합의로 일부 사건을 종결했지만, 브랜드 이미지는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었다. 이후 수천 개 매장이 폐점했다. Entrepreneur 매거진은 "퀴즈노스는 가맹점주와의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며 실패로 치달았다"고 평가했다.
세븐일레븐도 비슷한 논란을 겪었다. 공급업체로부터 받는 리베이트를 FDD에 공개했지만, 가맹점주에게 배분하지 않아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됐다. "공개했느냐"를 넘어 "공정하게 배분했느냐"라는 새로운 차원의 논쟁이었다.
맥도날드가 선택한 길: 투명성과 소통
반면 맥도날드는 성공 모델로 자리 잡았다. 맥도날드 역시 자체 물류로 상당한 이익을 얻지만, 몇 가지 차별화 전략으로 가맹점주의 두터운 신뢰를 쌓았다.
첫째, 투명한 원가 구조다. FDD에서 단순히 "리베이트를 받는다"는 수준이 아니라, 물류 자회사의 운영 구조, 원가 절감 방식, 가맹점 지원 프로그램을 포괄적으로 설명한다.
둘째, 가맹점주 자문위원회다. 가맹점주 대표로 구성된 위원회가 공급가격, 메뉴 개발, 마케팅 등 주요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한다.
셋째, 성과 공유 모델이다. 가맹점 매출이 늘어야 본부 수익도 증가하는 구조로, 본부가 가맹점 수익성 향상에 직접적 이해관계를 갖도록 설계했다.
한국의 선택 - 배우고 뛰어넘다. 급속한 제도 도입의 배경
한국은 2020년 피자헛 소송을 시작으로 불과 5년 만에 미국이 수십 년에 걸쳐 구축한 투명성 시스템을 급속 도입했다. 2024년 7월 계약서 필수기재 의무, 12월 불리변경 협의 의무, 그리고 2025년 9월 가맹점주 권익강화 종합대책이 연이어 시행됐다.
특히 2025년 대책은 획기적이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공적 대표성을 인정받은 단체에게 가맹본부와의 거래조건 협의를 요청할 권리를 부여했다. 본부가 정당한 사유 없이 협의를 거부하면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다.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과 유사한 이 강력한 권리는 미국의 자율적 가맹점주 단체보다 훨씬 강한 법적 지위를 갖는다.
또한 '계약해지권' 명문화로 과도한 위약금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게 했다. 이는 가맹점주에게 실질적 퇴출 옵션을 제공해 본부의 횡포를 견제하는 강력한 장치다.
미국 모델의 한계를 보완하다
미국의 FDD 시스템도 완벽하지 않다. 몇 가지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정보 과부하 문제가 있다.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FDD를 예비 가맹점주가 모두 이해하기 어렵다. 협상력 불균형도 여전하다. 공개가 되어도 가맹점주가 협상할 힘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사후 변경의 어려움도 있다. 계약 후 공급가격이 일방적으로 변경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FTC의 집행 역량도 제한적이다.
한국은 이를 정확히 파악하고 제도적으로 보완했다. 가맹점주단체 등록제로 협상력 불균형을 해결하고, 불리변경 협의 의무로 사후 일방적 변경을 차단하며, 공정위의 강력한 집행력으로 위반 행위를 적극 적발한다.
투명성이 곧 경쟁력이다
미국의 경험이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명확하다. 투명성이 곧 경쟁력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이 교훈을 빠르게 수용했다. 2018년 정보공개서 기재 의무에서 시작해, 불과 7년 만에 미국이 수십 년 걸쳐 구축한 시스템을 도입하고 일부는 초월했다.
2025년 현재, 한국 프랜차이즈 제도는 미국의 투명성과 한국의 강력한 집행력을 결합한 독특한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 17개 브랜드를 상대로 한 2,491명의 소송, 54.9%에 달하는 불공정 경험, 1조 원대로 예상되는 소송 규모는 분명 고통스럽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 프랜차이즈 산업이 글로벌 스탠다드로 도약하는 역사적 전환점이기도 하다.
미국의 반세기 경험은 한국에 명확한 메시지를 전한다. “투명성 없이는 신뢰가 없고, 신뢰 없이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한국은 이제 그 길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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