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특집] 578년 전 세종대왕이 소상공인에게 준 선물, 한글

우승련 기자

srwoo@fransight.kr | 2025-10-08 16:57:44

‘문해력 혁명으로 시작된 경제 민주화, 오늘날 프랜차이즈 생태계의 뿌리를 찾다’
조선시대 시전 상인부터 현대 가맹점주까지, 변하지 않은 '생존'의 이야기
GPT 생성이미지

[프랜사이트 = 우승련 기자]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578년 전 백성을 위해 문자를 창제한 세종대왕의 결단이 오늘날 소상공인과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되짚어본다. 1446년 반포된 훈민정음은 단순한 문자 체계를 넘어, 경제 활동의 주체로 나서지 못했던 평민들에게   '기록하고, 계산하고, 계약하는 힘'을 부여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세종 시대 소상공인, 그들은 누구였나

15세기 조선은 철저한 농본주의 국가였다. 오늘날의 소상공인에 해당하는 계층은 한양의 시전(허가 상점) 상인, 지방 장시에서 좌판을 펼친 영세 장사꾼, 전국을 떠돌며 물건을 파는 보부상, 그리고 중개 거래를 담당한 객주였다. 이들은 국가의 엄격한 통제 아래 놓여 있었다.

당시 한양에는 육의전을 비롯한 시전 상인들이 독점 판매권을 보장받았지만, 그 혜택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영세 상인들은 정기 시장에서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갔고, 보부상들은 도적과 날씨의 위험을 감수하며 농촌과 도시를 연결했다. 자본 축적은 요원했고, '상업은 말단 직업'이라는 유교적 편견 속에서 이들의 사회적 지위는 낮았다.

흥미롭게도, 이들이 겪은 어려움은 현대 가맹점주들의 고충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본사의 일방적 정책 변경, 높은 로열티와 원재료 강제 구매, 영업 지역 제한 등 오늘날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이 호소하는 '갑을 관계'의 원형이 이미 조선시대 시전 체제에 존재했던 것이다.

세종의 민생 정책, 소상공인을 위한 안전망

세종대왕은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상인과 백성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쳤다. 1421년 도입된 세금 자진 신고제는 지방 세리들의 횡포를 줄이고 농민 스스로 수확량을 보고하게 했다. 이는 오늘날 자영업자 세금 신고 제도의 초기 형태로 볼 수 있다.

또한 의창과 환곡 제도를 통해 흉년에 곡식을 빌려주는 공공 금융 체계를 운영했다. 당시 이자율은 약 10%로 결코 낮지 않았지만, 긴급 자금을 구할 수 없던 농민과 영세 상인에게는 생명줄이었다. 현대의 소상공인 정책 자금, 긴급 경영 안정 대출과 맥을 같이 한다.

1429년 편찬된 《농사직설》은 전국에 배포되어 농업 기술을 체계화했고, 이는 곡물 생산량 증가로 이어졌다. 잉여 생산물은 자연스럽게 시장 유통량을 늘렸고, 장시와 시전 상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세종은 경제의 기초 체력을 다지는 데 집중했고, 그 혜택은 결국 소상공인에게도 돌아갔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공납(지방 특산물 세금) 제도는 중간 상인인 방납인의 착취를 낳았고, 소금 전매제는 영세 소금 장수들의 생존을 위협했다. 상업을 천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상인들의 자본 축적은 구조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한글, 소상공인에게 '말할 권리'를 주다

세종대왕이 1443년 완성하고 1446년 반포한 훈민정음은 문자 그대로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였다. 한문을 읽지 못해 관청의 고시문조차 이해할 수 없던 평민들에게 한글은 혁명이었다.

특히 소상공인에게 한글의 의미는 컸다. 장부를 기록하고, 외상 거래를 문서로 남기고, 계약서를 직접 작성할 수 있게 되면서 경제 활동의 투명성이 높아졌다. 한문을 아는 양반 중개인 없이도 거래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는 오늘날 디지털 전환이 소상공인에게 가져온 변화와 유사하다. 스마트폰 하나로 주문, 결제, 재고 관리를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한글은 15세기 소상공인에게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경제'의 문을 열어줬다.

세종은 한글 창제와 동시에 집현전을 통해 의학서, 천문서, 농서를 한글로 번역·보급했다. 지식의 독점이 무너지면서 농민은 농사 기술을, 장인은 제조 기법을, 상인은 거래 관습을 글로 배우고 전할 수 있게 됐다. 지식 전파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경제 전반의 역량이 상승했다.

578년의 시차, 변하지 않은 과제

2025년 대한민국의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와 소상공인들은 578년 전 조선의 시전 상인, 보부상과 놀랍도록 유사한 고민을 안고 있다. 조선시대 시전 상인은 국가로부터 독점권을 받았지만 그 대가로 공물 조달 의무를 졌다. 현대 가맹점주는 브랜드 사용권을 얻지만 본사의 원재료 강제 구매, 높은 로열티, 일방적 계약 변경에 시달린다.

조선의 보부상은 자본 없이 떠돌며 장사했고, 도적과 날씨 변화에 늘 불안했다. 오늘날 배달 라이더와 1인 창업자는 플랫폼 수수료와 경기 변동, 최저임금 상승 등 외부 변수에 흔들린다. 당시 환곡 제도는 10% 이자로 농민에게 곡식을 빌려줬지만, 상환 압박은 컸다. 현재 소상공인 정책 자금은 저리로 제공되지만, 매출 부진 시 원금 상환 자체가 버거워진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가 하나 있다. 바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이다. 세종이 한글로 문해력을 선물했듯, 오늘날 소상공인들은 SNS, 온라인 커뮤니티, 가맹점주 협의체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연대한다. 정보 비대칭은 여전하지만, 적어도 일방적으로 당하지만은 않는다.

한글날에 되새기는 '공정한 생태계'

한글날은 단지 문자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세종대왕이 꿈꿨던 '백성이 주체가 되는 나라', 그 이상을 되새기는 날이다. 한글은 문해력을 통해 경제 민주화의 씨앗을 뿌렸고, 그 씨앗은 오늘날 프랜차이즈 생태계에서도 여전히 자라고 있다.

578년 전 세종이 고민했던 과제—민생 안정, 공정한 거래, 지식의 보급—는 2025년 대한민국 소상공인 정책의 핵심 의제이기도 하다. 가맹사업법 개정, 상생 협약, 플랫폼 수수료 규제 등은 결국 '작은 상인도 존중받는 경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한글날을 맞아, 우리는 묻는다. 578년 전 세종이 시작한 '백성을 위한 혁신'은 오늘날 프랜차이즈 산업에서 얼마나 실현되고 있는가? 가맹점주와 소상공인이 진정한 경제 주체로 서기 위해, 우리에게는 어떤 '새로운 한글'이 필요한가? 세종대왕이 한글로 연 문은 아직 완전히 열리지 않았다. 그 문을 끝까지 여는 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몫이다.

[ⓒ 프랜사이트 (FranSight).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