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한 그릇에 담은 한 해의 소망” … 떡국, 천년을 이어온 새해의 의례

우승련 기자

srwoo@fransight.kr | 2026-02-13 07:39:07

흰 떡에 담긴 ‘새로움’의 상징, 문헌 속 병탕(餠湯) 이야기
꿩에서 쇠고기까지, 지역과 세대를 잇는 설날 공동체의 맛

[프랜사이트 = 우승련 기자]

음력 정월 초하루, 새해의 문을 여는 첫 상(床) 위에는 어김없이 김이 오르는 떡국 한 그릇이 놓인다. 설날을 맞아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올린 뒤 가족이 둘러앉아 나누는 떡국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한 해의 소망과 공동체의 결속을 상징하는 의례다. 문헌에서는 떡국을 '병탕(餠湯)' 또는 '탕병(湯餠)'이라 불렀고, 설날 세찬(歲饌)의 핵심으로 기록했다.

조선 후기 세시풍속을 전하는 자료들은 설을 "천지만물이 새로 시작되는 날"로 인식했다. 깨끗하고 흰 가래떡을 썰어 맑은 장국에 끓여 먹는 관습은 이러한 새해의 정결함과 맞닿아 형성되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떡국은 '나이를 더하는 음식'으로도 통한다. "떡국 몇 그릇 먹었느냐"는 말이 나이를 묻는 관용어처럼 쓰였을 만큼, 설 떡국은 첨세(添歲)의 상징이었다. 실학자 이덕무의 시 「세시잡영(歲時雜詠)」에도 떡국이 사람마다 나이를 더해 준다는 풍속이 등장한다.

길게 뽑은 가래떡은 장수와 번창을, 둥글게 썬 떡은 엽전이나 태양을 연상시켜 복과 풍요를 기원하는 상징으로 해석된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설 특집 자료를 통해 떡국떡 모양의 변화와 그에 얽힌 의미를 소개하며, 한 그릇 속에 응축된 민속적 상징을 재조명하고 있다.

재료와 조리법의 변천도 흥미롭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쇠고기가 흔치 않던 시절에는 꿩고기로 장국을 내는 경우가 많았고, 이후 쇠고기 육수가 대중화되었다. 여기서 유래했다는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은 대중적으로 널리 회자되지만, 학술적으로는 민간 전승에 가까운 이야기로 전해진다. 오늘날에는 사골·양지 육수뿐 아니라 굴, 매생이 등 제철 해산물을 활용한 변형도 사랑받고 있다.

지역에 따라 떡국은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개성의 조랭이떡국은 가운데가 잘록한 독특한 떡 모양으로 유명하고, 충청 지역에는 익반죽으로 만든 생떡국이 전해진다. 남해안에서는 굴떡국과 매생이떡국이 설 상을 채운다. 이는 농경 조건과 해산물 접근성, 지역의 상차림 관습이 빚어낸 결과다. 북부 지방에서 만둣국이나 떡만둣국의 비중이 큰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떡국은 여전히 설날 아침을 여는 상징으로 남아 있다. 핵가족화와 간편식의 확산으로 명절 풍경은 달라졌지만, 편의점과 마트, 외식업계까지 설 시즌 떡국 상품을 앞다투어 선보이는 모습은 이 전통이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한 그릇의 떡국은 과거와 현재, 개인과 공동체를 잇는 다리다. 새해 첫 숟가락을 뜨는 순간, 우리는 조상 대대로 이어온 시간의 흐름 위에 서 있음을 실감한다. 설날 떡국은 그렇게 오늘도 묵묵히 우리의 한 해를 열어간다.

[ⓒ 프랜사이트 (FranSight).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