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하나의 조형물이 만든 2,216개 일자리...
우승련 기자
srwoo@fransight.kr | 2025-11-07 08:37:01
연 3억 달러 벌어들이는 '자유'의 경제학
자유의 여신상이 증명한 상징자본의 힘, 한국은 왜 없는가
[프랜사이트 = 우승련 기자]
46미터 높이의 구리 여인이 뉴욕 항구를 지킨 지 139년. 자유의 여신상은 여전히 미국 경제의 심장부를 뛰게 한다. 2024년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PS) 보고서에 따르면, 이 조형물 하나가 연간 372만 명의 방문객을 끌어들이고, 3억 7240만 달러의 지역경제 파급효과를 창출하며, 2216명의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페리 운항, 기념품 산업, 박물관, 숙박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경제 생태계다. 조형물이 상징자본에서 경제자본으로 완벽히 전환된 사례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와 K-컬처 열풍에도 불구하고, 자유의 여신상처럼 전 세계가 즉각 인식할 만한 국가 상징 조형물이 없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연간 방문객은 150만~200만 명 수준으로, 경제 파급효과는 1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
상징의 부재가 곧 경제의 격차다.
21년 제작, 139년 수익... '자유'라는 이름의 투자
자유의 여신상은 1865년 프랑스의 정치사상가 에두아르 드 라불레가 구상하고,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가 조형을 맡아 1886년 완공됐다. 21년의 제작 기간, 약 50만 달러(현재 가치 1700만 달러)의 비용이 투입됐다.
특히 구스타브 에펠이 설계한 내부 철골 구조는 훗날 초고층 빌딩 설계의 원형이 됐다. 받침대는 신문 발행인 조셉 풀리처의 모금 캠페인을 통해 12만 명의 시민 기부로 완성됐다. 국가가 아닌 시민이 만든 상징이었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진행된 100주년 복원 프로젝트에는 8700만 달러가 투입됐다. 새 횃불 교체와 구조 강화를 거쳐 1986년 7월 4일 재개장했다. 2019년 개관한 리버티 뮤지엄 건립비만 7000만 달러에 달한다.
미국은 자유의 여신상에 계속 투자했다. 그리고 그 투자는 매년 3억 달러 이상의 수익으로 돌아왔다.
한국의 현실: 규모도, 서사도, 시스템도 없다
대한민국에는 세종대왕상, 석굴암, 평화의 소녀상 등 의미 있는 조형물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역사적 기념물일 뿐, 세계인이 찾아오는 글로벌 상징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문제는 세 가지다.
첫째, 규모의 경제 부재다. 한국의 도시 조형물은 대부분 소규모 분산형 구조다. 지방마다 조형물이 있지만, 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메가 심벌'이 없다. 자유의 여신상은 하나의 조형물로 뉴욕 항만 전체의 관광·숙박·식음료 산업을 연결하지만, 한국은 수많은 소규모 조형물이 제각각 미시경제 단위에 머문다.
둘째, 이념적 브랜드의 부재다. 자유의 여신상은 '자유·민주주의·이민·희망'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시각화했다. 반면 한국의 주요 조형물은 기념·추모·지역 정체성 중심이다. 교육적·문화적 의미는 크지만, 국제적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보편적 가치 서사가 부족하다.
셋째, 경제적 연계 구조의 부재다. 미국은 자유의 여신상 주변에 완전한 관광경제 생태계를 구축했다. 페리, 기념품점, 박물관, 음식점, 숙박, 이벤트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조형물→소비→고용→재투자'의 선순환 구조를 이룬다. 반면 한국의 주요 조형물 주변 상권은 대부분 자영업자 개별 운영 형태로, 공동 마케팅, 수익 공유, 관광패키지 연계가 거의 없다.
규모도, 시스템도 없는 상징경제다.
수치로 본 격차
2024년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PS), 한국관광공사와 서울관광데이터포털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자유의 여신상은 연간 372만 명의 방문객을 기록한 반면, 한국의 대표적 상징지인 광화문광장은 150만~200만 명 수준에 그쳤다. 방문객 수에서 거의 2배 차이다.
더 큰 격차는 경제 파급효과에서 나타난다. 자유의 여신상이 창출하는 지역경제 효과는 3억 7200만 달러에 달하지만, 광화문광장 일대는 1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3분의 1 수준이다.
상징성에서도 차이는 뚜렷하다. 자유의 여신상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민주주의의 상징이지만, 한국의 주요 조형물들은 지역 역사나 기념 중심에 머물러 있다. 관광 연계 구조 역시 미국은 페리·소매·행사·브랜드가 강력하게 결합된 반면, 한국은 소상공인 개별 운영으로 인해 연계성이 약한 상황이다.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
전문가들은 한국이 기술강국을 넘어 문화·상징 강국으로 성장하려면 다섯 가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첫째, 국가 단위 상징물 투자다. 민주주의, 평화, 창의, 통합 등 보편적 가치를 담은 대형 상징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둘째, 프랜차이즈·관광 연계 클러스터 구축이다. 상징물 주변에 F&B·카페·리테일 밀집존을 조성하면 관광객 유입이 안정적이고 중소 브랜드의 지속 매출이 가능하다.
셋째, 스토리텔링형 콘텐츠 강화다. 조형물 주변에 해설관·체험관을 두면 체류시간과 소비가 늘어난다.
넷째, 공식 라이선스 굿즈 체계화다. 상징물 기반의 공식 상품화·브랜드 협업 구조를 마련하면 지역 소상공인과 창작 스타트업의 지속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다섯째, 통합 운영 모델 구축이다. 문화부·지자체·소상공인연합·프랜차이즈 협회가 함께 '상징→관광→소비→재투자'의 순환경제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상징은 장식이 아니라, 국가의 경제 심장이다"
자유의 여신상이 증명한 것은 명확하다. 상징은 장식이 아니라 국가의 경제 심장이라는 것. 이념, 건축, 상업, 시민의 감정을 하나의 순환 구조로 엮었을 때, 조형물은 단순한 기념물을 넘어 경제 인프라가 된다.
한국은 창의력이 넘친다. 하지만 규모와 서사의 부재로 인해 세계 관광과 연결되는 경제적 파급효과는 제한적이다.
자유의 여신상이 미국에 그랬던 것처럼, 한국도 보편적 가치와 시장 논리를 동시에 담은 국가 상징을 창조해야 한다.
자유에는 가격표가 있다. 그리고 그 투자는 반드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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