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억원 폭탄 판결이 흔든 프랜차이즈 제국..’
‘피자헛 판결 이후 17개 브랜드로 번진 소송 쓰나미, 1조 원 시대를 연 프랜차이즈 대격변의 서막..’

[프랜사이트 = 우승련 기자]
2024년 9월, 서울고등법원 417호 법정. 한국피자헛에 떨어진 판결문은 프랜차이즈 업계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차액가맹금 210억 원 반환 명령. 2022년 1심 75억 원에서 거의 3배 증가한 금액이었다. 재판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가맹계약 체결 시 차액가맹금이 명시된 정보공개서를 제공하지 않았고, 대상 원부재료와 금액을 일방적으로 정해 묵시적 합의가 성립했다고 볼 수 없다."
차액가맹금. 가맹본부가 원재료나 설비를 공급하면서 적정 도매가격을 초과해 취하는 금액이다. 본부가 1,000원에 구매한 원재료를 1500원에 공급하면, 그 차액 500원이 문제의 차액가맹금이 된다. 보관·물류·인건비·마진이 포함되지만, 정작 이 마진율은 계약서 어디에도 명시되지 않았다.
법원은 피자헛이 2016년부터 2022년까지 매출의 일정 비율(2019년 3.78%, 2020년 4.5%)을 물품대금에 포함된 형식으로 수령했으나, 가맹사업법령이나 가맹계약상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계약서에 없는 돈은 법률상 원인 없는 이익,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피자헛은 이미 이 판결로 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현재 대법원에 상고된 이 사건의 최종 판결은 2026년에 나올 전망이다.
2491명의 반란: 17개 브랜드를 흔든 집단소송
피자헛 판결 이후, 도미노는 쓰러지기 시작했다.
2025년 8월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집계에 따르면, 롯데슈퍼·롯데프레시(110명), BHC(327명), 배스킨라빈스(417명), 투썸플레이스(273명), 맘스터치(221명), 버거킹(60명) 등 총 17개 브랜드에서 2491명의 가맹점주가 차액가맹금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들이 겨냥한 것은 프랜차이즈 본부의 핵심 수익원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외식업 프랜차이즈 본사의 90% 이상이 차액가맹금을 수취하고 있으며, 2022년 기준 가맹점 한 곳당 연간 평균 2800만 원을 지급한다.
업계는 대법원이 차액가맹금을 부당이득으로 확정하면 최대 1조 원대 소송으로 번질 것이라 내다본다. 대부분의 가맹본부가 줄도산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한국형 프랜차이즈의 딜레마: 왜 차액가맹금인가
왜 한국에서만 차액가맹금 논란이 이토록 뜨거운가? 미국은 브랜드 사용료인 로열티 중심의 수익구조다. 맥도날드나 스타벅스처럼 매출의 일정 비율을 로열티로 받는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국토가 좁아 물류 공급이 용이하고, 영세 가맹본부가 74.5%(7360개)에 달한다. 이들에게 로열티보다 차액가맹금이 현실적인 수익원이었다.
영세 본부는 높은 로열티를 부과하기 어렵다. 대신 물품 공급을 통한 차액이 주 수익원이 되었다. 피자헛처럼 로열티와 차액가맹금을 모두 받는 곳도 있지만, 많은 본부는 둘 중 하나만 받는다. 문제는 이런 차액이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거나 정보공개서에 제대로 기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맹점주들은 "본부가 마진율을 명시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가격을 정했다"며 반발한다.
반면 업계는 "차액가맹금은 정상 유통마진"이라고 맞선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는 대법원에 보조참가 의견서를 제출하며 주장했다. "물류 인프라 구축, 품질 관리, 대량구매를 통한 안정적 공급에 대한 정당한 대가까지 반환하라는 것은 불합리하다."
제2전선의 개막: 가격 통제와 공급 불안
차액가맹금 소송에 이어 새로운 전선이 열렸다. 2025년 9월, 자율가격제를 시행하는 BHC와 교촌치킨의 점주들이 본사의 가격 통제가 가맹사업법 위반이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 중이다.
더 심각한 것은 원재료 공급 불안이다. 교촌치킨 점주 4명은 2025년 9월 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뜻을 밝혔다. 이들은 본사가 2024년 11월부터 2025년 7월까지 주문한 닭고기의 약 40%만 공급해 매출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프랜차이즈의 신뢰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로펌의 그림자, 그리고 업계의 경고
업계 일각에서는 일부 로펌이 수익을 위해 프랜차이즈 본사와 점주 간 소송을 부추기고 있다고 언급했다. 실제 한 로펌은 특정 브랜드 가맹점주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명회를 열고, 다른 브랜드 점주들에게도 소송인단을 모집했다.
프랜차이즈협회 관계자는 경고했다. "대법원 판결이 부당이득으로 결론나면 영세 가맹본부가 대부분인 국내 프랜차이즈 업계는 심각한 위기를 겪을 것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전망했다. "프랜차이즈는 업체마다 계약 조건이 달라 당분간은 건별로 법원 판단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본사와 가맹점주 간 차액가맹금 논란은 지속될 것이다.“
2026년, 운명의 판결이 온다
차액가맹금 논란은 단순한 법적 분쟁이 아니다. 한국 프랜차이즈 산업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시험하는 시금석이다. 대법원이 원심을 확정하면 과거 차액가맹금을 명시하지 않았던 수많은 본부가 막대한 반환 소송에 직면한다. 업계 전반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반대로 본부의 손을 들어주면 차액가맹금의 정당한 범위와 '적정 도매가' 판단 기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제시될 것이다.
210억 원 판결은 시작에 불과했다. 1조 원 소송 시대, 한국 프랜차이즈 업계는 지금 역사적 전환점을 맞고 있다. 2026년 대법원 판결은 단순히 피자헛 한 곳의 운명을 넘어, 수만 개 가맹점과 수백만 일자리가 걸린 업계 전체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법정의 시계추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것은 최종판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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