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적 고령화가 만드는 신복지경제,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형 모델
[프랜사이트 = 특별취재팀 박세현·허양 기자]
서울 7호선 아침 열차. 70대 김모 씨는 오늘도 활기찬 표정으로 지하철에 올랐다. "산책도 할 겸 시장도 들르고 친구도 만나러 간다"는 그는 하루 평균 8,000보 이상 걷는다.
노인 무료 지하철 이용은 도시철도 적자를 늘린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보건사회학자들은 다르게 본다. "그 한 걸음이 병원비를 줄이고, 병원비 절감이 국가 재정을 살린다." 한국 사회는 이제 복지를 비용이 아닌 투자로 재정의할 시점에 섰다. 교통복지는 단순한 노인 혜택이 아니라, 활동적 고령화를 통한 국가 생산성의 새로운 원천으로 전환되고 있다.
'지출'에서 '투자'로 패러다임 전환
한국의 교통복지는 오랫동안 '지출 항목'으로 인식됐다. 지하철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은 매년 7000억 원을 넘고, 국비 보전 논의는 4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하지만 최근 건강경제학 연구들은 이 정책이 국가 전체의 건강보험 재정과 GDP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분석(2024년)에 따르면 지하철 무임승차로 인한 신체활동 증가로 의료비가 연간 1.8조 원 절감됐다. 서울연구원 분석(2025년)은 고령층 사회참여율 증가로 GDP가 연 4.3조 원(0.18%)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OECD는 2024년 보고서에서 "고령층의 이동성 보장은 생산가능 인구 감소를 보완하는 제3의 생산성 자원"이라고 평가했다. 즉, 교통복지는 더 이상 소비성 복지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에 기여하는 생산적 복지로 진화하고 있다.
활동적 고령화가 만드는 경제적 가치
고령자의 이동성 확대는 세 가지 경로를 통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
건강 절감 효과: 지하철 무임 이용으로 평균 보행량이 3,000보 증가하면 1인당 연간 의료비가 20만 원 절감된다. 전체 65세 이상 인구 기준으로 연 1.8조 원이 절감되는 셈이다. 이는 건강보험료 인상 압력을 완화하는 예방의학적 투자 수익이다.
사회참여 효과: 교통 접근성이 높을수록 고령층의 자원봉사, 문화활동, 일자리 참여율이 상승한다. 서울시 사례를 보면 무임 이용 노인 중 28%가 지하철로 이동 가능한 사회활동을 주 2회 이상 한다. 이들이 창출하는 사회경제적 가치는 비시장 노동을 포함해 연 2.4조 원 규모로 추정된다.
내수경제 순환 효과: 지하철 접근성을 통한 지역 소비도 증가한다. 노년층의 외출 빈도가 월평균 11.2회에서 15.8회로 늘어나면서 소비지출이 연 4700억 원 증가했다. 특히 시장, 음식점, 문화시설 등 소상공인 밀집 상권에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움직이는 노인'이 '돌아가는 경제'를 만든다. 교통복지는 소비성 지원이 아니라 국가경제의 순환 에너지다.
세계도 주목하는 교통복지 투자 전략
일본: 도쿄는 실버패스 제도를 단순 교통정책이 아닌 '도시 건강전략'의 일환으로 재정비했다. 고령층 이동량 증가로 2015~2023년 사이 65세 이상 의료비 증가율이 전국 평균보다 22% 낮게 유지됐다.
영국: 런던시의 '프리덤 패스'는 매년 2억 파운드의 재정이 투입되지만, 보건부는 이를 건강 예산의 일부로 간주한다. 복지지출을 비용이 아닌 예방투자로 전환한 대표 사례다.
프랑스: 파리의 '나비고 솔리다리테' 제도는 저소득층 중심의 무임 교통을 운영하면서 교통 이용 데이터를 공공보건 데이터와 연동한다. '활동지수'를 국가 건강지표로 관리하며 복지와 보건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하고 있다.
한국형 교통복지 3.0 전략
한국은 세 가지 혁신축을 중심으로 교통복지를 국가 성장전략으로 전환할 수 있다.
통합 재정 회계 구축: 지하철 무임 손실을 국토교통부가 아닌 보건복지부 예산에서 일부 보전한다. 교통 이용의 건강효과를 건강보험 재정과 연계한 복합회계제도를 구축해 교통복지를 보건예산의 한 형태로 공식 인정하는 것이다.
디지털 건강교통 플랫폼: 고령자 교통카드에 건강 데이터(활동량, 이동거리 등)를 연동한다. 일정 수준 이상 활동 시 건강보험료 할인이나 복지포인트를 지급하는 '움직이는 만큼 건강해지는' 인센티브 시스템을 만든다.
지역균형형 교통복지: 지하철이 없는 지역은 교통바우처로 동일한 효과를 제공한다. 지방 어르신에게도 이동을 통한 건강증진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해 '교통이 있는 도시'와 '교통이 없는 농촌'의 불평등을 해소한다.
7천억 투자하면 1조 6천억 돌아온다
교통복지는 과연 적자를 내는 정책일까. 프랜사이트가 한국교통연구원과 보건사회연구원의 공동 분석 데이터를 종합한 결과는 정반대였다.
65세 이상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에 투입되는 비용은 연간 7228억 원이다. 하지만 이로 인한 경제적 편익은 1조 5600억 원에 달한다. 투자수익률로 따지면 116%다. 7천억 원을 투자해 1조 5천억 원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버스 무료·할인 지원도 마찬가지다. 연간 4100억 원이 투입되지만 7300억 원의 경제적 편익이 발생한다. 투자수익률은 78%로, 투입한 돈보다 78% 더 많은 가치가 창출된다.
특히 주목할 것은 통합 교통바우처를 전국으로 확대했을 때의 효과다. 6000억 원을 투자하면 1조 3200억 원의 편익이 예상된다. 투자수익률은 120%로 세 가지 정책 중 가장 높다.
이 수치들이 의미하는 것은 명확하다. 교통복지는 재정 적자를 만드는 사업이 아니다. 오히려 투입한 금액보다 훨씬 큰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고수익 공공투자사업'이다. 평균적으로 교통복지에 1원을 쓰면 1.2원이 경제 전체로 돌아온다. 민간 기업도 부러워할 만한 수익률이다. 다만 그 수익이 기업의 이윤이 아니라 국민 건강과 지역경제 활성화, 의료비 절감이라는 형태로 나타날 뿐이다.
"노인 복지는 돈 먹는 하마"라는 인식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제대로 설계된 교통복지는 국가형 복지 인프라 투자이자, 초고령사회를 준비하는 가장 효율적인 성장 전략이다.
복지는 성장의 또 다른 이름
20세기 복지는 '보호의 제도'였다. 하지만 21세기 초고령사회의 복지는 '참여와 활동의 인프라'로 진화해야 한다. 이동할 수 있는 노인은 병원에 덜 가고, 사회에 더 오래 머무르며, 경제를 더 오랫동안 움직인다. 무임승차 논쟁은 끝났다. 교통복지는 이제 단순한 노인 복지가 아니다. 국민의 건강과 생산성을 키우는 국가의 가장 확실한 투자다. 건강보험을 지키고, 노동시장을 유지하며, 지역경제를 살리는 국가 성장전략의 핵심이다.
한국이 세계 최초로 '복지에서 투자로' 나아가는 신복지경제 국가로 도약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어쩌면 매일 지하철 한 칸에서 조용히 걸음을 내딛는 어르신들의 발끝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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