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5년 1조 5천억 적자 앞둔 대한민국, 복지를 지키려면 복지를 조정해야 한다
[프랜사이트 = 특별취재팀 박세현·허양 기자]
"65세 이상 지하철 무료 이용, 이제는 바꿔야 합니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몇 년째 되풀이되는 말이다. 서울교통공사만 해도 매년 3,500억 원, 전국으로는 7,2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내고 있으니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앞선 기사에서 확인했듯 이 제도는 다른 한편으로 건강보험 지출을 연 1조 원 이상 줄여준다. 교통공사 장부에는 적자지만 건강보험 장부에는 흑자를 만드는 복잡한 구조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유지할까, 폐지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고치면 사회 전체에 가장 좋을까"로 말이다.
10년 뒤, 적자는 1조 5천억이 된다
숫자가 말해주는 미래는 분명하다. 2025년 우리나라 고령자 비율은 20.3%다. 2036년이면 30%를 넘어선다. 단순히 나이 든 사람이 많아지는 게 아니다. 공짜로 지하철 타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는 뜻이다.
서울만 봐도 그렇다. 2012년에는 65세 이상 무임승차 인원이 69만 명이었다. 2024년에는 135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서울교통공사가 무임승차로 잃는 돈도 1900억 원에서 3500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한국교통연구원은 더 충격적인 숫자를 내놨다. 지금처럼 가다간 2035년에 무임승차 적자만 연간 1조 5000억 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복지니까 참아야지"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수준이다.
개혁안은 크게 세 가지가 논의되고 있다. 각각 장점도 있고 문제도 있다.
나이를 올리자 - 70세부터 무료로
의학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오래 살게 됐다. 건강 상태도 좋아졌다. 지금의 70세는 1980년대 60대 초반만큼 건강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서울연구원이 조사해보니 응답자의 64%가 "무임 나이를 70세로 올려야 한다"고 답했다. 더 흥미로운 건 65세 이상 어르신들의 81%가 찬성했다는 점이다. 정작 당사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동의한 것이다. 계산해보면 나이를 70세로 올릴 경우 서울교통공사 손실이 연간 1,200억 원(약 30%) 줄어든다. 하지만 걱정도 있다. 65세부터 69세까지 어르신들, 특히 형편이 어려운 분들의 발이 묶일 수 있다.
시간을 정하자 - 출퇴근 시간만 피하면
평일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저녁 6시부터 8시까지만 제한하자는 방안이다. 영국 런던에서 쓰는 '프리덤 패스' 방식과 같다. 교통공사 계산으로는 출퇴근 시간 혼잡도가 12% 줄어들고, 운영 효율도 4% 좋아진다. 적자도 약 500억 원 줄일 수 있다. 젊은 직장인과 어르신들 사이에 불편한 시선도 줄어들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정치적으로 가장 받아들여지기 쉬운 방법으로 평가받는다.
소득을 따지자 - 필요한 사람만 무료로
건강보험료나 재산세를 기준으로 형편이 어려운 분들에게만 무료로 태워주자는 방식이다. 재정적으로는 가장 효과가 크다. 최대 60%까지 적자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체면이다. 신청하고 심사받는 과정에서 "나는 가난한 노인입니다"라고 증명해야 한다. 이런 낙인효과 때문에 여론조사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젊은층은 70% 찬성, 노년층은 56% 반대였다.
전문가들은 이 방법을 단독으로 쓰기보다는 '나이 상향+소득 기준' 두 가지를 섞는 게 낫다고 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프랜사이트가 함께 컴퓨터 모델을 만들어 다섯 가지 시나리오를 돌려봤다. 2025년 기준이다.
지금처럼 가면 어떻게 될까? 적자 절감은 없다. 대신 건강보험은 1조 원 절약된다. 사회 전체로 보면 1원 쓸 때마다 1.84원 이익이다.
나이를 70세로 올리면? 적자는 1200억 원 준다. 하지만 활동량이 줄어 건강보험 절약이 2500억 원 감소한다. 사회 이익은 1.62원으로 떨어진다.
출퇴근 시간만 막으면? 적자는 500억 원 줄고, 건강보험 절약은 500억 원만 줄어든다. 사회 이익은 1.78원. 나쁘지 않다.
소득 낮은 사람만 무료로 하면? 적자는 2200억 원이나 준다. 하지만 건강보험 절약이 5500억 원 감소한다. 사회 이익은 1.41원으로 뚝 떨어진다.
나이 올리고 시간도 정하면? 적자는 1700억 원 줄고, 건강보험 절약은 2000억 원 감소한다. 사회 이익은 1.79원. 거의 지금 수준이다.
결론은 명확했다. '나이를 올리되 70세로 한 번에 올리지 말고, 출퇴근 시간은 제한하자'는 방법이 가장 균형 잡혔다. 돈도 아끼고 건강 효과도 지키면서 사회 갈등도 적은 방법이다.
"복지를 줄이는 게 아니라 오래가게 만드는 겁니다" 서울시립대 도시사회정책연구소 이정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건 '혜택을 줄이느냐'가 아니라 '어디를 줄이고 어디를 유지하느냐'입니다. 복지를 합리적으로 만드는 게 결국 복지를 지키는 겁니다."
한국교통연구원 조윤석 연구위원도 비슷한 생각이다. "무임 나이를 올리는 건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단번에 확 올리면 안 됩니다. 2026년에 67세, 2030년에 70세로 천천히 올려야 충격이 적습니다."
전문가들 말은 하나로 모인다. 지하철 무임 정책은 없앨 게 아니라 고쳐 쓸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에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다섯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나이와 시간을 함께 조정한다. 2026년에 67세, 2030년에 70세로 천천히 올린다. 평일 아침 7~8시는 이용을 제한한다.
둘째, 많이 움직이면 보험료를 깎아준다. 교통카드 이용 기록을 건강보험과 연결한다. 한 달에 일정 거리 이상 다니면 건강보험료를 월 2000원 정도 깎아준다.
셋째, 나라와 지방이 함께 부담한다. 무임승차 적자의 절반은 중앙정부(보건복지부)가, 나머지 절반은 지자체가 낸다. 건강보험 절약 효과가 있으니 복지부도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다.
넷째, 지하철 없는 곳엔 바우처를 준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지역 어르신들에게는 1년에 12만 원어치 교통바우처를 지급한다.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다.
다섯째, 효과를 통합해서 평가한다. 복지부와 국토교통부가 함께 '교통복지 효과평가위원회'를 만든다. 건강 효과, 이동권, 재정 효율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조정은 포기가 아니다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는 우리 사회가 40년 동안 지켜온 어르신 공경의 상징이다. 하지만 사람들 나이 구조가 급격히 변하는 지금, 복지도 변해야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 나이를 올리고 시간을 정하는 건 복지를 줄이는 게 아니다. 효율적으로 만들어서 복지를 지키는 방법이다. 무임승차 논쟁의 끝은 '공짜냐 아니냐'가 아니라 '건강과 재정을 함께 살릴 균형점 찾기'다. 초고령사회로 가는 대한민국. 이제 복지는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로, 정치가 아니라 과학으로 설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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