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피알(APR) 3부작 - 혁명, 그림자, 그리고 미래

[프랜사이트 = 특별취재팀 박세현, 허양 기자]
'마케팅 모래성' 논란의 실체
화려한 성공 스토리 뒤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따른다. 에이피알의 고속 성장을 이끈 바로 그 '역발상 전략'이, 역설적으로 가장 큰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되고 있다. '마케팅으로 쌓아 올린 모래성'이라는 날 선 비판은 과연 타당한가.
숫자로 본 그림자: R&D 0.4%의 의미
광고비가 제조 원가보다 많다
기업의 재무제표는 그 기업의 철학과 미래 전략을 비추는 거울이다. 에이피알의 재무제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압도적으로 높은 마케팅 비용과 상대적으로 초라한 R&D 비용이다.
2024년 기준, 에이피알이 지출한 광고선전비와 지급수수료 합계는 약 2,350억 원으로 전체 매출액의 30%를 훌쩍 넘어선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금액이 같은 해 제품의 직접적인 제조 비용인 매출원가(약 1,800억 원)보다도 높다는 사실이다.
이는 소비자가 3만 원짜리 화장품을 구매할 때, 제품의 원료와 제조비(약 7,500원)보다 더 많은 약 1만 원을 광고와 판매 수수료로 지불하고 있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아모레퍼시픽 대비 R&D 투자 '38분의 1'
반면, 회사의 미래 기술 경쟁력을 담보하는 연구개발비 비중은 매출액의 0.4% 수준에 불과하다. 절대적인 금액으로 비교하면 더욱 극명한 차이가 드러난다.
에이피알의 연간 R&D 투자는 약 35억 원인 반면, 아모레퍼시픽은 매년 1,300억 원 이상(매출액의 3% 이상)을 R&D에 쏟아붓는다. 절대액 기준으로 무려 38배에 달하는 격차다.이러한 극단적인 비용 구조는 심각한 질문을 던진다.
제품의 본원적 가치는 어디에
첫째, 제품의 본원적 가치에 대한 의문이다. 에이피알의 성공이 제품 자체의 혁신적 기술력이나 대체 불가능한 품질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뛰어난 마케팅 능력으로 제품을 '포장'하고 '판매'하는 데 능했던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다. 화장품 제조 역시 대부분 한국콜마나 코스맥스와 같은 OEM/ODM 업체에 위탁하고 있어, 생산 과정에서 다른 회사와의 뚜렷한 차별점을 찾기 어렵다는 점도 이러한 비판에 힘을 싣는다.
둘째, '마케팅 약발'이 떨어졌을 때의 리스크다. 현재의 높은 매출과 영업이익이 마케팅 효과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면, 시장 경쟁이 심화되거나 새로운 마케팅 채널의 등장으로 기존 방식의 효율이 떨어졌을 때 회사의 성장은 급격히 둔화될 수 있다. 탄탄한 기술력이라는 '안전망' 없이, 마케팅이라는 외줄 위에서 아슬아슬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에이피알은 자체 R&D 센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70여 개의 특허를 통해 기술력을 입증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매출 규모 대비 R&D 투자의 절대적인 비중이 너무 낮다는 점은, '기술 기반의 뷰티 테크 기업'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 반드시 넘어서야 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벌판에서의 전투: 경쟁 심화와 진입 장벽의 부재
블루오션은 끝났다
에이피알이 개척한 홈 뷰티 디바이스 시장은 이제 더 이상 블루오션이 아니다. 에이피알의 눈부신 성공을 목격한 수많은 경쟁자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LG전자의 '프라엘'이 꾸준히 인지도를 높이고 있으며, 국내외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유사한 콘셉트의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글로벌 가전 대기업이나 로레알과 같은 거대 뷰티 기업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입할 경우,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튼튼한 성 없이 벌판에서 싸우는 격"
이러한 환경에서 에이피알의 '진입 장벽'은 무엇인가?
현재 에이피알의 가장 강력한 해자(Moat)는 시장을 선점하며 쌓아 올린 브랜드 인지도와 막대한 고객 데이터, 그리고 특유의 마케팅 속도감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마케팅 노하우는 모방이 가능하다. 새로운 천재 마케터가 등장하여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 있다. 디자인과 콘셉트 역시 쉽게 카피될 수 있다.
결국 장기적인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누구도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기술적 해자'가 필요하다. 에이피알의 제품만이 제공할 수 있는 독점적인 기술, 특허로 보호받는 강력한 성능, 임상적으로 증명된 압도적인 효과 등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에이피알은 끊임없이 마케팅 전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는 '벌판에서의 전투'를 계속해야 할지도 모른다.
기술 없는 성장의 한계
한 투자 분석가는 현재 에이피알의 경쟁 환경을 이렇게 비유한다. "튼튼한 성을 쌓고 싸우는 공성전이 아니라, 사방이 뻥 뚫린 벌판에서 싸우는 난전과 같다." 이 난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마케팅이라는 '창'을 더욱 날카롭게 벼르는 것과 동시에, R&D라는 '방패'와 기술력이라는 '성벽'을 시급히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다.
[저작권자ⓒ 프랜사이트 (FranSight).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