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vs 전문점, 양극화 속 새 길 찾는 김밥 산업
[프랜사이트 = 우승련 기자]
출근길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를 집어 드는 직장인, 광장시장 '마약김밥' 앞에 긴 줄을 선 외국인 관광객들, 프리미엄 김밥 전문점에서 현미와 무첨가 재료로 만든 김밥을 주문하는 소비자. 2025년 현재, 김밥은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모습으로 한국인의 일상을 채우고 있다.
‘김(海苔)’과 ‘밥‘이 만나 탄생한 이 간편식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 한국인의 정서와 추억, 그리고 공동체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하지만 2024년 김밥 산업은 전례 없는 변곡점을 맞이했다. 편의점 김밥 매출은 연속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한 반면, 전통 김밥 전문점들은 점포 수 감소와 수익성 악화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소풍 도시락에서 국민 간편식으로
김밥의 기원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노리마키(마키즈시) 영향을 받았다는 설과 조선시대 김쌈 전통에서 발전했다는 설이 공존한다.
1930년대 신문 기록에 '김밥'과 '김쌈밥'이 등장하며, 당시 일본식 두꺼운 김을 사용하라는 권고 기록이 남아있다. 하지만 이후 참기름과 단무지 등 한국적 풍미로 독자적인 진화를 거듭했다는 것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설명이다.
해방 직후부터 1960년대까지 김밥은 소풍과 운동회의 특식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재료는 시금치, 당근, 단무지, 계란, 어묵 등 기본형이 중심이었다.
국가유산청 자료에 따르면 "60~70년대 소풍 특식에서 출발해 90년대 이후 학생과 직장인의 간편식으로 확산됐다"며 김밥이 가족의 정성과 나눔, 공동체성을 매개하는 음식으로 기억된다고 설명한다.
1970~1990년대 경제성장기에는 분식점 보급과 함께 대중 간편식으로 자리매김했다. 햄, 맛살, 참치마요 등 가공식품이 속재료로 대중화되며 김밥은 '언제 어디서나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했다.
김밥천국에서 바르다김선생까지... 진화하는 김밥
2000년대 들어 김밥 산업은 두 갈래로 분화했다. 편의점 삼각김밥은 저가와 휴대성으로 급성장했고, 동시에 '바르다김선생'과 같은 프리미엄 김밥 전문점이 고급 재료와 현미, 저염 콘셉트로 시장을 확대했다.
2020년대에는 건강과 가성비라는 양극화 트렌드가 더욱 뚜렷해졌다. 편의점은 포장 기술을 개선해 김의 바삭함을 유지하며 아침 수요를 확대했고, 프리미엄 전문점은 원재료의 산지 표기와 무첨가, 비건 옵션 등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지역 특색을 살린 김밥도 주목받았다. 통영의 충무김밥은 어선 노동 환경에서 상함을 막기 위해 밥과 김만 말고 오징어무침과 무깍두기를 따로 곁들이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광장시장의 꼬마김밥은 한입 크기와 겨자간장 소스의 조합으로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됐다.
2024년, 명암 엇갈린 김밥 시장
2024년 김밥 산업의 성적표는 극명하게 갈렸다. GS25의 경우 김밥류 매출이 2022년 40.7%, 2023년 37.6%, 2024년 9월 24.4% 증가를 기록했다. CU도 비슷한 성장세를 보이며 편의점 김밥 시장은 연속 고성장을 이어갔다. 특히 2024년 아침 간편식 매출은 전년 대비 50.2%나 급증했다.
하지만 전통 김밥 전문점의 사정은 달랐다. 통계청 집계 기준 김밥집 수는 2021년 정점을 찍은 후 2022년에 4.6% 감소했고, 2024년에도 감소세가 지속됐다.
주요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실적도 부진했다. 김가네는 2024년 매출 375억원으로 전년 대비 4.6% 감소하며 2억6500만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가맹점 수도 424개에서 377개로 줄었다. 반면 일부 브랜드는 선전했다. 싸다김밥은 2024년 매출 36억원, 영업이익 4억7800만원을 기록하며 가맹점을 82개에서 97개로 늘렸다. 바르다김선생은 168억원의 매출과 17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선비꼬마김밥도 167억원 매출, 1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가맹점을 221개에서 248개로 확대했다.
K-푸드 열풍, 김밥을 세계로
2024년 김밥 산업의 가장 큰 화제는 K-푸드 열풍을 타고 해외 시장이 급성장했다는 점이다. CU의 경우 2025년 7~8월 외국인의 김밥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31% 급증했다. 이는 2024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추세가 2025년 상반기까지 이어진 것이다.
냉동 김밥 수출도 급증했다. 2024년 10월 기준 냉동 김밥 수출은 전년 대비 약 42% 증가하며 가공 쌀 제품 수출의 핵심 품목으로 떠올랐다. 김(해조류) 수출도 2023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2024년에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원가 압박과 거버넌스 리스크
하지만 김밥 산업이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높다. 김, 쌀, 참기름 등 주요 원재료 가격 변동성이 크고, 인건비 상승도 부담이다. 나트륨 함량이 높다는 지적에 따라 저염 소스와 현미, 채소 강화 제품 출시가 확대되고 있지만, 이는 원가 부담으로 이어진다.
프랜차이즈 거버넌스 리스크도 주요 이슈다. 김가네의 경우 2024년 하반기 사내 분쟁이 언론에 보도되며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김밥천국은 단일 본사가 아닌 상표와 간판을 공유하는 다수 사업자로 운영돼 전국 단일 실적 집계가 곤란하고, 상표와 조직 분절로 관리 일관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4년 가맹사업 정보공개서 규제와 원재료 거래 투명성을 강화하며 가맹점주 보호에 나섰지만, 이는 본사에 추가적인 행정 비용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 줄 김밥에 담긴 정(情)
그럼에도 김밥이 한국인에게 갖는 의미는 변함없다. 김발로 정성껏 말아 자른 뒤 함께 나누는 형식 자체가 공동 행위를 내포한다. 한국의 도시락 문화와 야외 여가 감성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재외동포들의 수기에는 "쿨러 가득 김밥"이 가족과 이민 서사의 정체성 음식으로 회고된다. 학술과 미디어 담론에서도 김밥은 "한국적인 것"을 설명할 때 자주 소환되는 국민 간편식, 국민 소울푸드로 자리매김했다.
국가유산청도 김밥을 "집, 학교, 회사, 야외를 잇는 공유의 음식"으로 정의하며 "가족의 정성, 나눔, 공동체성을 매개하는 음식"이라고 설명한다.
한국 김밥 산업의 2024년 프랜차이즈 본사 매출은 보수적으로 추정해 1800억~2200억원 규모다. 치킨이나 커피 카테고리(조 단위 매출)에 비하면 작지만, 김밥이 한국인의 일상과 정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숫자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크다.
2025년, 김밥 산업은 내수 시장의 정체를 수출과 기술 혁신으로 돌파하려 하고 있다. 한 줄 김밥에 담긴 60년의 정성이 새로운 시대를 향해 또 한 번 진화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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