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이후 '안전·체험형' 전환... 테마파크·실내 이벤트 중심 재편
[프랜사이트 = 우승련 기자]
매년 10월 말, 호박 등불과 괴물 의상으로 물드는 거리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한때 서구의 이국적 문화로 여겨졌던 할로윈이 어느새 전 세계 소비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2천 년 전 켈트족의 수확 의식에서 출발한 이 축제는 21세기 들어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당기는 경제적 신호탄이자, 연간 수백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비즈니스로 진화했다.
미국에서만 올해 131억 달러(약 18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할로윈 시장. 단순한 문화 행사를 넘어 4분기 소비 시즌의 개막을 알리는 이 축제가 어떻게 세계 경제의 한 축으로 성장했는지, 그리고 각 대륙에서 어떤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켈트족 '사윈'에서 글로벌 소비 시즌으로
할로윈의 뿌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켈트족은 매년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사윈(Samhain)' 축제를 열었다. 여름의 끝과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이 행사는 단순한 수확 축제를 넘어, 죽은 자의 영혼이 지상으로 돌아온다고 믿던 영적 의식이었다.
중세 유럽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사윈은 기독교 축일인 '만성절(All Saints' Day)' 전야제와 결합했다. 'All Hallows' Eve'라는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이민자들이 대서양을 건너며 이 전통을 미국으로 가져갔고,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과 '잭오랜턴(Jack-o'-lantern)' 같은 현대적 풍습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결정적 전환점은 20세기 중반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교외화가 진행되고 아동 중심 문화가 확산하면서, 할로윈은 가족 단위 대중 행사로 탈바꿈했다. 1950~60년대 캔디 제조업체와 유통업체가 본격적으로 마케팅에 나서면서 오늘날과 같은 상업화된 축제의 틀이 완성됐다.
미국: 크리스마스 앞당기는 '131억 달러의 신호탄'
할로윈 비즈니스의 중심은 단연 미국이다. 미국소매연맹(NRF)과 프로스퍼 인사이트의 연례 조사에 따르면, 2025년 할로윈 총 지출액은 사상 최고치인 131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전년 대비 12.9% 증가한 수치로, 1인당 평균 지출액도 114.45달러로 상승했다.
2024년 기준 미국 소비자들의 지출 내역을 살펴보면 그 규모가 실감난다. 장식 38억 달러, 의상 38억 달러, 사탕 35억 달러, 인사 카드 5억 달러 순이었다. 특히 장식 부문은 2019년 26억 달러에서 2024년 38억 달러로 42%나 급증하며 '홈 데코레이션' 트렌드를 선명히 보여줬다.
주목할 점은 조기 쇼핑 현상이다. 전체 소비자의 47%가 10월 이전에 할로윈 쇼핑을 시작한다. 2014년 32%였던 것과 비교하면 15%p 상승한 수치다. 할로윈이 더 이상 10월 말의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9월부터 시작되는 '가을·4분기 소비 시즌'의 문을 여는 신호탄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참여율도 높다. 오늘날 미국 인구의 약 73%가 할로윈 행사에 참여하며, 이는 팬데믹 이전 수준을 뛰어넘는다.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가 주도하는 이 축제는 아동과 반려동물을 포함한 가족 단위 참여가 특징이다. 코스튬·홈데코·사탕 중심의 '경험+콘텐츠화' 트렌드가 두드러진다.
유럽: '가벼운 유희'로 정착한 계절 소비
유럽에서도 할로윈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2024년 총 지출액이 7억7600만 파운드(약 1조 4790억 원)로 추산되며, 이는 2019년 대비 64% 증가한 수치다. 독일은 약 5억4000만 유로 규모로 추정된다. 유럽 전역을 합산하면 20억 유로(약 2조4000억 원) 이상의 시장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유럽의 할로윈은 미국과 결이 다르다. 대규모 거리 행진보다는 펍 이벤트, 홈파티, 테마파크 프로그램 중심으로 전개된다. '가벼운 유희형' 성격이 강하며, 영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젊은 세대가 주도하는 계절 소비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한국: 이태원 참사 후 '안전·체험형'으로 재편
한국에서 할로윈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이태원·홍대 등 젊은 세대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라는 비극적 사건 이후, 대형 밀집형 거리 행사는 크게 위축됐다. 대신 안전하고 통제된 환경의 실내·예약형 이벤트로 재편되는 중이다.
현재 한국의 할로윈 시장은 에버랜드, 롯데월드 등 대형 테마파크가 주도하고 있다. 에버랜드는 '블러드 시티(Blood City)' 테마로 넷플릭스와 협업한 공포 체험을 제공하고, 롯데월드는 '다크문(Dark Moon)' 시즌으로 미디어 맵핑과 퍼레이드를 선보인다. 캠핑장, 호텔, 카페, 편의점 등도 할로윈 특수를 겨냥한 제품과 이벤트를 출시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 기업들이 '할로윈'이라는 명칭을 직접 사용하는 대신 '다크문', '블러드 시티' 같은 우회적 테마명을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할로윈에 대한 문화적 거부감이나 부정적 여론을 고려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한국의 할로윈 시장 총규모는 공식 통계가 제한적이지만, 테마파크와 유통업계의 10월 매출 급증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20~30대와 가족 단위 고객이 핵심 소비층으로 부상하면서, 한국형 할로윈 문화가 '안전·체험·프리미엄' 방향으로 자리잡는 모습이다.
글로벌 시장 전망: 2030년대까지 지속 성장
할로윈 비즈니스의 미래는 밝다. 글로벌 할로윈 코스튬 시장은 2024년 47억 달러에서 2033년 68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할로윈 장식 시장도 2023년 35억 달러에서 2032년 61억 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성장의 배경에는 몇 가지 공통된 트렌드가 있다. 첫째, '경험 소비'의 확산이다.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을 넘어 테마파크 방문, 파티 참석, SNS 인증샷 등 경험 자체를 소비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둘째, 조기 쇼핑 트렌드다. 할로윈이 10월 말의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9월부터 시작되는 시즌 소비로 확장되고 있다. 셋째, 안전과 프리미엄의 중요성이다. 특히 한국처럼 대형 사고를 겪은 지역에서는 통제된 환경의 고품질 이벤트로 진화하는 양상이다.
전통과 상업의 만남이 만든 새로운 문화
2000년 전 켈트족의 수확 축제로 시작된 할로윈이 21세기 글로벌 소비문화의 핵심 이벤트로 자리 잡은 것은 전통이 현대 상업과 만나 새로운 의미를 창출한 대표적 사례다.
할로윈은 더 이상 단순한 문화 행사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여는 4분기 소비의 시작점이자 연간 100억 달러를 넘나드는 거대 시장으로 성장했다. 유럽에서는 젊은 세대 중심의 계절 소비 이벤트로 정착했고, 한국에서는 안전과 체험을 강조하는 프리미엄 실내 이벤트로 진화하고 있다.
앞으로도 할로윈은 각국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계속 진화하며, 4분기 경제를 여는 중요한 시즌 이벤트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할 것으로 보인다. 경험과 안전, 전통과 혁신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할로윈 비즈니스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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