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랜사이트 = 박세현 편집국장]
2025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풍요로운 소비의 시대 한가운데 서 있다. 과거의 소비가 단순히 필요를 채우거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이었다면, 오늘날의 소비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취향’과 ‘가치관’을 표현하는 행위로 진화했다. 이러한 변화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두 가지 키워드가 바로 ‘아보하’와 ‘토핑 경제’다. 이들은 겉보기에는 정반대의 지향점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놀랍게도 서로를 보완하며 현대 소비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아보하’는 ‘아주 보통의 하루’의 줄임말로, 평범하고 일상적인 순간들에서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찾는 소비 심리를 의미한다. 거창한 성공이나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라, 소소한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작고 진솔한 즐거움에 더 큰 가치를 두는 것이다. 경제적 불확실성과 무한 경쟁의 피로감에 지친 현대인들은 더 이상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값비싼 명품을 좇지 않는다.
대신, 나만을 위한 작은 사치, 예를 들어 취향에 맞는 향초를 켜고 좋아하는 책을 읽는 시간, 혹은 동네 단골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과 같은 ‘나만의 루틴’에서 소중한 만족을 얻는다. 이는 한때 유행했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현상이다. 소확행이 주로 일회적인 이벤트에 초점을 맞췄다면, 아보하는 일상 그 자체를 특별하게 만들고자 하는 심리 현상이다. 자신에게 심리적 위안과 휴식을 주는 소비는 곧 내면의 평화를 찾는 과정과 다름없다.
이러한 흐름을 간파한 브랜드들은 일상의 평범함을 특별한 경험으로 바꾸는 데 집중한다. 화려한 광고나 마케팅보다는, 소비자의 일상에 스며들어 정서적 유대감을 쌓는 ‘스토리텔링’에 공을 들인다. 예를 들어, 향초 브랜드가 단순히 향을 파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휴식의 시간’이라는 스토리를 제공하고, ‘휘게’ 스타일의 찻잔으로 ‘아침을 여는 나만의 의식’이라는 가치를 부여하는 식이다. 이러한 소비는 물질적인 소유를 넘어, 정서적인 만족감을 높이고, 더 나아가 개인의 정신 건강과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기여한다. 소비자는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을 보듬고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반면, ‘토핑 경제’는 ‘아주 보통의 하루’를 나만의 개성으로 화려하게 채우는 역동적인 소비 흐름이다. 완성된 상품에 소비자가 원하는 요소(토핑)를 덧붙여 개성 표현과 맞춤형 체험을 극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맞춤 제작(커스터마이징)’이 주로 고가의 상품에 한정되었던 반면, 토핑 경제는 일상 속 모든 제품으로 확산된다.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와 ‘폰꾸’(휴대폰 꾸미기)부터 시작해, 나만의 색깔과 장식을 더한 운동화(‘신꾸’), 심지어 의류나 가구에 이르기까지, 소비자는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어 제품을 완성해 나간다. 이는 단순히 제품을 소비하거나 소유하는 차원이 아니다. 자신의 취향과 창의력을 발산해 나만의 일상을 만들어가는 일종의 ‘예술 활동’과도 같다.
토핑 경제는 소비자를 ‘수동적인 구매자’에서 ‘능동적인 창작자’로 격상시킨다. 자신이 직접 꾸민 제품을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은 또 다른 재미와 만족감을 선사한다. 소비자는 상품을 구매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주인공이 된다. 이 과정에서 얻는 심미적 만족감과 ‘나만의 것’이라는 소유감은 기존 소비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기쁨을 안겨준다. 브랜드 역시 소비자가 직접 ‘토핑’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제품에 녹아들도록 하면서 그들의 창의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주목할 점은 ‘아보하’와 ‘토핑 경제’가 서로 충돌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 둘은 현대 소비자의 이중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며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한다. 일상의 소소함에서 평화를 얻으면서도, 그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나만의 개성을 빛내고 싶은 현대인의 심리가 이 두 트렌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극히 평범한 ‘아주 보통의 하루’를 살아가지만, 그 하루를 ‘토핑’이라는 자신만의 색깔로 특별하게 꾸미는 것이다.
2025년의 소비문화는 ‘소소함’과 ‘개성’이라는 두 가지 핵심 가치를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다. 소비는 이제 단순히 수동적·물질적 행위가 아니라, 개인의 내면적 가치와 미학을 실현하는 능동적이고 매우 중요한 정서적 행위가 되었다. 브랜드와 마케터는 이러한 트렌드를 깊이 이해하고, 소비자와의 진정한 공감 속에서 새로운 소비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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